문학의 도시, 런던
런던은 세계적인 금융, 경제 도시이며 관광도시로, 대영박물관,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 타워, 런던 아이, 타워브리지, 빅벤, 템스 강, 세인트 폴 대성당, 하이드파크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 곳이다. 그러나 런던은 또한 단연코 문화와 문학의 도시이다. "거리마다 사연이 넘쳐나고, 건물마다 역사가 배어 있다. 술집과 클럽은 작가들로 북적거리고 자주 이들의 창작물의 산실이 돼 주기도 한다". (서문 중에서) 저자들도 언급했듯이, 런던은 그 자체로 위대한 문학작품들을 탄생시킨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상연되던 극장, 찰스 디킨스가 즐겨 찾았으며 여러 작품들의 배경이 된 술집들,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블룸스버리 그룹 멤버들이 모이던 장소,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극이 올려지던 웨스트엔드 극장가, 첩보소설의 배경이 된 카페, 술집, 호텔, 역사 깊은 출판사와 서적상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런던이다.
아주 오래전 늪지대였던 런던이 어수선하고 범죄가 판을 치던 중세시대를 지나, 인구가 수십만 명이 넘게 되어 북적거리고 활기가 넘쳤던 근대의 런던을 거쳐 지금의 런던이 되는 동안 문학계도 같이 성장해왔다. 이 책에서는 런던의 역사와 문화, 문학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총 21개의 테마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초창기 문학의 후원자 역할을 한 앨프레드 대왕과 제프리 초서와 윌리엄 셰익스피어 같은 불멸의 작가들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 같은 급진주의자, 설교자, 신비주의자, 셸리, 바이런, 키츠, 워즈워스 등 낭만파들의 사랑과 미스터리한 죽음,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 테니슨 등 빅토리아풍 작가 및 보헤미안들, 범죄소설과 아동문학의 대가들, 모더니스트들, 여성운동가들, 히피족과 첩보소설 작가, 쟁쟁한 출판사와 서적상들 등 다채롭고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많은 문호들이 등장하고,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문학사적으로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 장소, 그 순간, 유명 문학작품의 탄생 장소 등이 재미있는 일화와 숨겨진 뒷이야기들과 버무려 보여지고 있다.
단순히 문학적인 사건에만 국한되거나 백과사전적 지식을 나열한 것이 아니고, 정치, 역사적 시대상황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지루하지 않다. 더불어 이들의 활동과 흔적이 남아 있는 실제 장소의 주소가 함께 들어 있어, 그들처럼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고 음식을 맛보고 살던 곳을 둘러보는 즐거운 경험도 할 수 있다. 각 테마는 연대기적인 특성은 크지 않아, 관심 있는 테마부터 읽어도 좋다. 문학과 색다른 여행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문학 도시로서의 런던을 알차게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여행과 문학은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고 삶의 의욕을 북돋워주며, 새로운 세계와 생각에 눈뜨게 해준다. 특히 여행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리스트 중 하나다. 여행 초기에는 주로 명소를 중심으로, 남들도 많이 가는 곳으로 가게 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나만의 여행, 뭔가 의미있는 여행으로 진화해간다. 점차 본인이 원하는 테마가 있는 여행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미술사/문화사 여행, 트래킹, 휴양, 맛집 순례, 유명 출판사나 술집 순례 등 다양한 테마가 등장하고 있다.
이 책은 일반 여행서처럼 런던의 잘 알려져 있는 명소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문학사를 연대기적으로 나열한 책이 아니다. 문학 작품이나 작가들을 폭넓게 다루면서도 그와 관련된 역사, 정치적 배경, 그리고 런던 구석구석의 의미있는 장소와 거기에 깃들여 있는 스토리를 들려준다. 한마디로 여행과 문학과 역사가 결합된 책이랄까. 제프리 초서부터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 존 밀턴, 마르크스, 조지 버나스 쇼, 조지 오웰, 그레이엄 그린, 존 드라이든,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 윌리엄 블레이크, 예이츠, 키츠, 셸리, 새뮤얼 존슨, 바이런 경, 버지니아 울프,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D.H. 로런스, 윌리엄 워즈워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샬럿 브런티, 오스카 와일드, 딜런 토머스, 아가사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 이언 플레밍, 조지프 콘래드, 베아트릭스 포터, 제임스 매튜 베리, 조앤 롤링,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레베카 웨스트, 도리스 레싱, 앨런 무어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명 작가들의 생활, 사랑, 해프닝과 실수, 라이벌간 경쟁 등 이야깃거리는 끝이 없어 보인다.
저자들은 런던 곳곳에 숨어 있던 문학, 작가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그들만의 위트와 유머로 버무려낸다. 너무나 생생하고 때론 너무 솔직하며, 동시에 많은 자료를 동원하여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팩트에 집중하려 노력한 덕분일까. 작가든 작품 속 인물이든 그 배경이든 너무 생생하여,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자신이 런던의 어느 거리를 작가를 따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