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미투의 정치학

미투의 정치학

저자
정희진 외 지음
출판사
교양인
출판일
2019-01-31
등록일
2023-11-14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22MB
공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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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폭력 사건에서는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추궁당하는가?
누가, 왜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가?
‘미투 운동’의 성장을 기록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페미니즘의 실천


2018년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조직 내 성폭력 피해 고발 이후 정계, 문화예술계, 스포츠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미투’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 중심적 성 문화를 뿌리째 뒤흔들어 일상의 혁명을 촉구하는 매우 급진적인 운동이다. 호주제 폐지 운동 이후 이렇게 전 세대의 여성들이 고르게 지지한 운동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투 운동은 법과 제도, 사회 질서 전반에 성차별적 통념이 얼마나 단단히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말하기’ 이후 피해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은 여전히 너무 크고,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거의 진전이 없다. 용기 있는 목소리가 근본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지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쉽게 조성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직장 내에서 벌어진 권력형 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남성이면 노동 문제가 되고 피해자가 여성이면 성적인 문제로 둔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 문제를 다루어 온 연구 모임 ‘도란스’는 네 번째 책 《미투의 정치학》에서 미투 운동을 둘러싼 주요 쟁점을 분석하고 미투 이후를 모색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성적 자기결정권’,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는 한국 사회의 남성 연대, 사법부의 젠더 감수성, 젠더 폭력과 젠더 개념 등을 살펴봄으로써 성차별과 성폭력을 지속시키는 우리 사회의 부정의를 파헤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개인도 조직도 모두 이기적일 뿐, 정의로움을 찾기 어렵다고 느꼈다. 조직을 앞세워 개인을 희생하거나, 오로지 개인만 남게 될 뿐이었다. 내가 원한 건 이타적인 예민함이었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대선 캠프에 들어갔다. 그러나 성폭력을 당하고,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됐다. ‘미투’는 마지막 외침이었다. 이 싸움의 끝에는 정의가 있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는 미투 사건의 본질인 ‘위력’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 집필 작업에 함께 참여했지만 끝내 원고를 담을 수 없었다.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는 아직까지 법원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본질과 맥락, 사실을 잘 다루고 있어 큰 위로가 된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성범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함께 이해하고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미투의 정치학》을 계기로 또 다른 가해자를 막고, 현재의 피해자를 위로할 수 있는 마법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 김지은(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피해자이자 고발자)

‘안희정 사건’의 의미와 미투의 정치학

2019년 2월 1일, 한국 여성 운동사에 기록될 만한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바로 안희정 전 충남 도지사 성폭력 사건의 2심 판결이었다.
안희정 전 지사는 자신의 지위를 앞세워 수행비서 김지은에게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강제추행 등 총 10건의 성폭력 혐의로 기소하여 4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2018년 8월 14일에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성폭행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에 관한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성폭행 피해를 당한 뒤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거나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한 점 등을 들어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은 공판에서 판결에 이르기까지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보수적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고 10개의 공소 사실 가운데 9개를 인정하여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안희정 전 지사는 법정구속 되었다. 전문가들은 2심 결과를 두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인정하는 판례가 거의 없는 한국 실정에서 중요한 지표가 될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현행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에서 ‘위력’이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위세를 말한다. 따라서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사회적 ? 경제적 ? 정치적 지위나 권세를 이용한 성폭력이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법정에서 ‘위력 성폭력’이 인정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더욱이 안희정 사건은 피해자 김지은의 ‘미투’ 고발 이후 거의 1년간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다른 성폭력 사건 재판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희정 사건을 비롯해 여러 ‘미투’ 사건이 법정으로 가면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성적 자기결정권’ ‘성인지(性認知) 감수성(gender sensitivity)’ 같은 낯선 개념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개념들은 성폭력 사건에서 재판부의 판단을 좌우하는 주요 쟁점이기도 하다. 《미투의 정치학》은 이러한 쟁점들을 중심으로 안희정 사건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아 여성의 ‘말하기’, 미투의 본질,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의미 등을 살펴본다.
안희정 사건은 조직 내 최고 권력자가 남성일 때, 그 권력이 임면권이라는 구체적인 권한부터 해당 업계 전반에 걸친 영향력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을 때, ‘부하 직원’의 위치에 있는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가 얼마나 손쉽게 일어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미투 사건을 떠올려보라. 문화예술계와 체육계에서 터져 나온 미투 대부분이 이 같은 구조에서 반복해서 일어났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이 사건은 특정 영역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
모든 운동은 맥락을 이해할 때만 효과를 낼 수 있다. 미투 운동 역시 그렇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미투 운동의 핵심이 ‘위력’이며 그 위력의 작동 방식과 맥락은 젠더 인식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고 본다. 이 점이 이 책에서 안희정 사건이 주요 분석 대상이 된 이유다. ― 〈머리말〉(10, 21쪽)

〈그 남자들의 ‘여자 문제’〉(권김현영)는 안희정 성폭력 사건 재판 방청기이다. 권김현영은 1심과 2심 공판을 방청하면서 사건과 관련해 무엇이 어떻게 언론에서 보도되는지, 피해자를 둘러싼 음모론이 어떻게 확산되고 어떤 프레임이 만들어지는지, 여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재판부에 대한 차가운 분노와 피해자를 향한 뜨거운 연대의 마음으로 써 내려간 이 글에서 필자는 언론의 지나친 개입과 왜곡에 주목한다. 언론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거치면서 여성 인권 의제는 가십거리로 전락했다. ‘정치 공작’이라는 프레임도 만들어졌다. 한편으로 이 글은 성폭력을 “큰일 하는 남자의 사생활 문제” 정도로 치부하는 한국 진보 남성 집단에 대한 정신 분석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운동〉(정희진)은 미투 운동을 중심에 두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젠더 개념을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희진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서 미투 운동으로 가시화되는 폭력은 극히 일부임을 지적한다. 드러나는 폭력과 감추어지는 폭력은 누가 결정하는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남성 사회가 관심을 두는 것은 피해자의 고통이나 인권 침해가 아니라 해당 사건이 남성 사회에 얼마나 타격을 주는가이다. 가해자가 조직의 권력자인가, 사건이 남성 전체의 위신에 타격을 주는가 따위가 사건의 성격을 좌우한다. 가정 폭력 피해나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피해가 ‘미투’로 수용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춘향에겐 성적 자기결정권이 필요했다〉(한채윤)는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소설 《춘향전》을 통해 ‘정조’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성폭력 범죄의 보호법익이 바뀐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한다. 또 ‘(여성이) 정조를 지키겠다고 스스로 결정할 권리’ 정도로 오해받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안희정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피해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은 것이 곧 동의를 뜻한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죄를 가해자에게 묻지 않고 자신에게 ‘있는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피해자에게 죄를 묻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조를 지킬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성폭행 피해자를 비난하고 처벌했던 과거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한채윤은 《춘향전》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지금껏 우리 사회가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왜 남성에게는 전혀 없는 정조 관념이 여성에게는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젠더 폭력과 젠더 개념〉(루인)은 성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을 고찰한다.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대외 침략을 지지하는 우익 페미니즘이나 성 역할을 이용해서라도 여성이 출세해야 한다는 ‘파워 페미니즘’과도 다르다. 루인의 글은 미투 운동이 대중화되고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일부에서 페미니즘과 퀴어를 나누어 진영화하려는 흐름을 비판한다. 루인은 왜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젠더 폭력이 되고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렇지 않은지를 묻는다. 곧 누가 진정한 ‘여성’이며 폭력의 개념은 누가 정하는가라는 여성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논쟁을 제기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위력은 반드시 행사된다
- <그 남자들의 ‘여자 문제’>


연구 모임 ‘도란스’는 이 책에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이자 고발자인 김지은의 글을 실을 예정이었다. 김지은은 미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당사자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간 날조된 여론을 바로잡는 글을 썼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 중이고 결국 대법원까지 가게 될 터인데(실제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자 피고인 안희정의 변호인단은 즉각 상고했다) 김지은이 쓴 글로 인해 다른 법적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법조인들의 우려에 따라 결국 싣지 못하게 되었다. 그 대신 안희정 사건 1심과 2심 재판을 방청한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의 글을 통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재판이 되어버린 1심 진행 상황과 이 사건을 계기로 뚜렷이 드러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적 통념을 확인할 수 있다.

누가 무엇으로 재판을 받았나
피고인 안희정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끝내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았고 심지어 스스로 폐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증거 인멸의 우려 등을 이유로 구속 영장이 청구되었다. 그러나 구속 영장을 심사한 재판부는 피의자의 방어권이 충분히 행사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기각했다. …… 공동대책위원회의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공판이 시작되자마자 안희정의 휴대폰이 폐기된 것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피해자의 사생활 자료 전체를 제공해야 하는지 여부로 공방을 벌인 것 자체가 ‘피고인’ 재판이 아니라 ‘피해자’ 재판으로 흘러가는 시작이었다고 비판한다. (45, 46쪽)

성폭력 가해자의 두 얼굴
어떤 성폭력 가해자들은 조직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유형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조직 내에서 자신이 권력자가 아니라 평등한 상사라는 점을 어필하고 싶어 한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여직원에게는 원치 않는 성적 접근을 상습적으로 하면서 한편으로 다른 직원들에게는 권위적이지 않은 좋은 상사의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되면 조직 전체가 그 여직원이 겪고 있는 피해는 보지 않으려 한다. 한 사람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상황을 만들어놓는 전형적인 방식 중 하나다. (56쪽)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되지 않았다”는 판결
존재하는 위력은 반드시 행사된다. 그 점을 재판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기피 신청 같은 제도를 만든 것이 아닌가. 위력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행사되기 때문에 당사자들 간에 직접적인 업무 관련성이 얼마나 있는지 살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위력이 존재만 하고 행사된 적이 없다는 것이 1심 재판부 판결의 전부였다. 애초에 위력에 의한 간음죄 자체가 폭행이나 협박 등 명시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위력을 활용해 성을 착취하는 경우를 법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따라서 “위력이 존재하나 행사되지 않았다”는 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만든 목적 자체에 위배되는 판결이다. (60쪽)

‘정치적 음모’라는 프레임
안희정 1심 재판에서 피고소인 안희정 측 변호인들은 고소인 김지은이 박근혜 정부 시절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한 것을 정치적인 성향 문제로 만들고자 했다. …… 그러나 피해자가 실제로 특정 세력과 결탁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피해자들은 바로 진보와 인권을 표방했던 그들을 지지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그들의 정치적 지지자였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무시되었다. 여성 지지자들을 남성 정치인 개인의 매력에 끌린 일종의 팬덤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무시가 가능했을 것이다. (40쪽)

한국 진보 남성 권력과 미투 운동
소위 진보 남성 엘리트들은 자신의 지지자, 팬, 제자, 학생 들이 미투할 때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다. 한때 좋아하고 지지하고 따르던 이들이 선생님, 상사, 대표를 향해 미투를 제기했을 때 이것을 성폭력의 문제로, 남성 기득권 권력의 문제로 이해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진보 남성 정치인들은 (보수와 다름없이) 미투를 ‘여자 문제’로 이해한다. “큰일 하는 남자가 아랫도리 간수를 제대로 못한 일”로 취급한다. 진보 남성 엘리트들은 대체로 이를 “좌절된 사랑 때문에 생긴 복수” 정도로 생각했고, 다소부적절한 수준의 여자 문제 혹은 스캔들이라고 생각했다. (67, 68쪽)

드러나는 성폭력, 가려지는 성폭력
-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 운동>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은 여전히 사소한 이슈다. 미투 운동은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가 기존의 여성 운동을 넘어, 대중 운동이자 문화 운동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이어지면서 도저히 ‘사소화’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을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여성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심각한 폭력 중 하나인 가정 폭력과 성 산업 종사 여성에 대한 폭력은 ‘미투’에 수용되기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미투 고발은 가해자가 특정 커뮤니티 내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거나, 그에 준하는 유명세를 지니고 있어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경우, 그리고 피해자가 다수 발생했을 때로 국한된다. 정희진은 이러한 미투의 ‘선별성’에 주목하고 이유를 분석한다.

범죄 신고가 혁명이 되는 사회
‘미투 혁명’.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혁명’보다 더 정확한 명명은 없을 것이다. ……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법치국가에서 미투는 비상식적인 운동이다. 성폭력과 성적 괴롭힘/학대/추행은 모두 법에 명시된 명백한 불법 행위다. 거듭 말하지만, 미투는 범죄 신고 ‘캠페인’일 뿐이다. 절도나 사기 피해를 당하면 (귀찮아서 안 하는 경우가 많지만)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상식이고, 시민은 신고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피해 사실을 말하려면, 인생을 걸거나 커리어와 평판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83, 84쪽)

남성과 여성의 ‘자의성’은 같지 않다
미투 운동에 반발하는 남성들이 가장 흔히 하는 주장은 다음 두 가지다. “미투는 여성들의 자의적(自意的)인 해석에 따른 것이다, 이 문제가 남녀 대립 구도로 가서는 안 된다.” 논의 구도 자체가 틀린 주장이다. 재현되는 모든 이야기는 자의적, 부분적 지식이다. 여성의 이야기를 자의적이라고 판단하는 이들의 인식과 판단 역시 자의적이다. “모든 이야기는 자의적이라 등위가 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위치에 따른 자의성을 고려하는 적극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갑’의 자의성과 ‘을’의 자의성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 (89쪽)

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추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상황은 가해자(피의자)에게 해야 할 질문을 피해자에게 하는 경우다. 성폭력 범죄가 그렇다. 조사를 가장한 피해자 비난, 피해자에 대한 호기심, 통념에 근거한 여론 재판은 법적 심판 이전의 일상 문화다. 유아 성폭력이거나 피해자가 여러 명인 사건을 제외하고는 피해자가 질문에 시달린다. 피해자는 목숨을 건 저항이 얼마나 단호하고 절절했는지, 특히 자신이 얼마나 피해자다웠는지 최대한 증명해야 한다. …… 절도나 사기 사건, 즉 다른 형사 사건의 피해자에게 성폭력 피해자만큼 질문하는가? 아니, 사건 발생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가? (95, 96쪽)

남성 사회가 선별하는 피해자
여성 검사의 미투는 검찰의 망신이었기 때문에, 그 망신이 싫은 다른 남성들이 ‘나선 것이다’. 여성 검사가 가정 폭력 피해자라면 우리 사회는 관심이 없다. 가정 폭력은 집안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을 당했다고 TV에 나와 폭로하는 전문직 여성도 드물 것이다. 아니, 그런 문제에 관심 있는 매체가 ‘없다’. 많은 경우 여성의 인권은 강남역 살인 사건처럼 아무 이유 없이 낯선 남성에게 살해당하거나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이 남편을 피해 다니다가 살해당해야만 가시화된다. (101, 102쪽)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무엇인가
- <춘향에겐 성적 자기결정권이 필요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왜 정조를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는지, 고학력 엘리트 여성인데도 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았는지 질문했다. 그러고는 피고인(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스스로 자기 권리를 지키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므로 가해 행위는 없었다고 판결한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바로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성폭력 사건을 고발한 것이 아닌가? 오늘날 ‘성적 자기결정권’은 법률에서뿐 아니라 성교육에서도 널리 쓰이는 개념이지만 그 뜻이 정확히 알려지지도, 또 제대로 쓰이지도 않는 듯하다. 한채윤의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한채윤은 고전 소설 《춘향전》을 여성주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면서 성폭력 범죄를 다룰 때 성적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설명한다.

춘향이 지키려 한 건 정조가 아니다
익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진 것과 달리 춘향은 이몽룡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 여인이 아니다. 한번 맺은 언약이 영원할 것이라 믿는 순진한 여인도 아니다. 현직 사또의 자제와 사귀는 데 어떤 위험과 이익이 따르는지 바로 파악할 만큼 현명하고, 정식 혼례를 올리지 않고 합방을 실행할 만큼 과감하며, 동시에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뒤탈이 생기지 않을지까지 치밀하게 살펴보는 냉철한 인물이다. …… 어쩌면 춘향이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꿈꾸고 결심했던 삶이 아닐까. 사회가 정해놓은 ‘정조’가 아니라 신분의 귀천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119, 120쪽)

정조권을 넘어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우리나라 법조계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공식적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1990년 간통죄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1990년 9월 10일 선고)이었다. …… (판결문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 1항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규정했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꾸려나가는 자율적 주체임을 존중받는 것이다. 또한 누구나 자기 삶의 주체로서 당연히 사랑, 연애, 결혼, 성관계를 언제 어떻게 누구와 할지 혹은 하지 않을지를 타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131, 132쪽)

누구를 위한 저항인가
가부장제가 만든 강력한 정조 이데올로기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원하지 않는 성관계는 최선을 다해 거부할 것이라고 전제한다. 마치 기계가 스위치만 누르면 작동하듯 여성은 정조를 지키려고 본능을 작동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런 까닭에 법은 거부의 행동은 즉각적이고 동의는 침묵으로도 표현된다고 이해하며 항거 불가능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다룬다. …… 대체 피해자에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저항하라고 요구하는 것일까. 그런 강력한 저항을 원한 법은 막상 피해자가 목숨과 인생을 걸고 어렵게 피해 사실을 고발했을 때는 왜 그 저항을 인정하지 않는가. (136, 137쪽)

성적 자기결정권은 ‘거부할 권리’가 아니다
흔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거부할 권리’라고 설명하는데, 이런 설명이 오해를 불러왔다. 사람들은 거부하지 않았으니 너도 원했던 것이 아니냐 혹은 원하지 않았는데 왜 거부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권리가 있는데도 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는지 그 속내를 궁금해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누구에게나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곧 누구에게나 ‘상대의 거부를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 피해자에게 왜 거부하지 않았냐는 질문은 가해자에게 거부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행동을 했느냐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139, 140쪽)

누가 ‘여성’이고 무엇이 ‘성폭력’인가?
- <젠더 개념과 젠더 폭력>


최근 들어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일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성 소수자들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1980년대부터 시작된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운동은 많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공론장에서 ‘젠더’, ‘젠더 폭력’ 개념은 논란 속에 있다.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나 연구는 활발하지 못한 실정이며 이는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가 드러낸 성 소수자 혐오의 배경이기도 하다. 루인은 이러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인식하며 젠더 개념이 인식되지도, 합의되지도 않은 한국 사회에서 왜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젠더 폭력이 되고 어떤 여성에 대한 폭력은 그렇지 않은가를 질문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나 남성으로 태어나는가?
인간은 두 가지 중 하나의 섹스-젠더로 태어나지 않는다. 만약 인간이 여자 아니면 남자 둘 중 하나의 섹스-젠더로만 태어난다면, 인터섹스(intersex)를 비롯해 이원 섹스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인간은 사회에서 추방되거나 ‘변태’로 치부될 뿐이다. …… 인간이 태어났을 때 지정받는 섹스-젠더는 ‘생물학적 사실’과 무관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의사는 태아의 모든 생물학적 조건을 검토해서 섹스-젠더를 결정하지 않는다. 외부 성기 형태를 ‘힐끗 보고’ 음경으로 판단할 수 있으면 남아, 음경으로 판단할 수 없으면 여아로 분류한다. 이런 분류 관습 때문에 나이가 들어 인터섹스로 진단받는 경우도 많다. (161, 162쪽)

페미니즘과 트랜스젠더퀴어
(많은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페미니즘은 참된 생물학적/신체적 섹스가 있다는 믿음 자체에 도전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여전히 젠더 관점은 (특정 경험에 한정되어 있는데도 보편적이라고 가정하는) 여성의 관점을 뜻하며, 젠더 분석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래서 여성이라는 젠더 범주는 여전히 언제나 ‘섹스’로서 여성, ‘생물학적 여성’을 가리킨다.
젠더와 폭력의 관계를 다루는 논의도 예외가 아니다. 젠더와 폭력 혹은 여성과 폭력의 관계를 다룬 논의의 대부분이 비트랜스여성만을 대상으로 삼는다. 여성은 언제나 ‘비트랜스여성’의 축약어인데도(뿐만 아니라 비장애 여성, 이성애 여성의 축약어이기도 하다) 이를 문제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런 인식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의 경험, 트랜스여성의 경험은 누락된다. (167쪽)

‘여성’은 동질적인 집단일 수 없다
여성 범주 내에서도 다양한 권력이 작동하고 착취와 억압이 작동한다. 이것은 은폐할 것이 아니라 성찰과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문제다. 젠더 연구는 젠더, 계급, 인종 등이 교차하는 횡단의 정치로 접근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젠더 자체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상호 교차성 연구가 되어야 한다. (172쪽)

새롭게 해석하는 젠더 폭력
이제 젠더 폭력을 한 개인이 태어났을 당시 지정받은 젠더로 평생 살아가고 그 젠더 규범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실천으로 체화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즉 젠더 폭력이란 각 개인에게 여성이나 남성과 같은 특정 젠더 범주를 지정하고 이렇게 지정한 젠더에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압하는 일상의 실천이다. (184쪽)

새로운 해석을 바탕에 두고 보면 ‘아내 폭력’은 여성 파트너에게 적절한 젠더 역할을 훈육하는 실천일 뿐만 아니라 파트너를 여성 젠더 범주로 환원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가해자 남편의 주장처럼 ‘아내 폭력’이 ‘교육 실천’이라면, 이것은 아내 위치에 있는 사람을 우선 여성 젠더 범주로 환원하고 그 여성 젠더 범주에 적절한 사회문화적 규범을 강압하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 이렇게 해석할 때 ‘아내 폭력’은 퀴어를 향한 혐오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 ‘아내 폭력’에서 가해 남성은 폭력을 통해 남성 범주를, 퀴어 혐오 폭력에서 가해자는 혐오와 폭력을 통해 자신의 지배적 규범성을 체화하고 선언한다. (185,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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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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