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역사인가 - 린 헌트, 역사 읽기의 기술
역사왜곡, 가짜뉴스, 상이한 언론보도, 새로운 발견…
역사란 무엇이고, 무엇이 역사가 되는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21세기판이다!”
_질 레포어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
누가 무엇을 위해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가!
정치인들은 공공연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고 교과서가 편향되었다며 내용에 관여한다. 언론은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르게 보도한다. 새로운 발견과 기술 발달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를 재평가하도록 다그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역사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가? 오늘날 역사는 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가?
『무엇이 역사인가』에서 저명한 역사학자 린 헌트는 근래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짐과 동시에 ‘무엇이 역사인가’란 질문에 대답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실을 생생히 전한다. 또한 과거에 대한 진실 모색은 지속적인 발견 과정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이 우리 사회에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역사는 증거가 정직하게 제시되는 데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온갖 문제에 겸허하게 대처하고, 맹목적 애국심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며, 다른 민족과 문화를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역사가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이유
2012년 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오바마가 미국에서 출생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불법적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하와이 출생 사실을 확인해주는 출생증명서를 제시하자 트럼프는 다시금 이 문서의 위조 가능성을 주장하며 분란을 이어간다. 증거 없는 의혹 제기다. 2016년 미 대선 기간 중 트럼프는 오바마의 미국 출생 사실을 인정한다.
2005년 12월 14일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가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홀로코스트 부정(否定) 중 하나로, 관영 언론사가 연설문에서 해당 부분을 들어내고 대통령이 그런 언급을 하지 않은 듯 꾸미지만 그 효과는 분명히 발생한다. 2013년 말부터 2014년 초에 국제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응답자 중 홀로코스트 관련 역사적 서술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는 비율은 5분의 1에 그쳤다. 역사에 대한 거짓말은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더 넓고 더 빨리 퍼져나간다.
『무엇이 역사인가』는 ‘역사에 대한 노골적인 거짓말’을 비롯해 역사적 진실을 둘러싼 최근의 쟁점들을 다룬다. 역사적 기념물의 보존과 파괴를 둘러싼 갈등, 역사 교과서 논쟁, 전 세계 다양한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등을 소개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적 진실을 규정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 역사적 진실을 밝혀낼 최선의 방법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역사적 진실을 찾아서
‘무엇이 역사인가’란 질문에 답하는 일, 즉 역사적 진실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진실을 규정하는 작업 없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자들의 거짓말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또한 기념물과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은 절대 해결될 수 없으며, 기억 전쟁은 끝없이 되풀이 된다. 대중은 무엇이 역사인지를 알 길이 없다.
역사적 진실을 규정하는 일은 사실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첫 번째 단계와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라는 두 번째 단계의 작업을 필요로 한다. 우선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났는지, 600만 유대인이 고의적 계획에 따라 학살되었는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 수가 과장되었는지 여부 등 사실 여부의 확인은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과거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없는 대상이다. 새로운 문서, 새로운 유물, 새로운 자료가 끊임없이 발견되며 기정사실을 뒤집을 수 있다. 이러한 잠정적 성격에서 음모론은 싹튼다. 그러므로 역사는 ‘활용 가능한 최적의 증거’를 지속적으로 발견해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단계인 해석 문제는 사실 문제보다 더욱 복잡하다. 역사학자들은 동일한 사건을 놓고 서로 다른 사실을 강조하여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전할 수 있으며, 이러한 불협화음은 특정한 해석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 차이가 크다면 역사는 과거의 진실성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 그저 상대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대립할 뿐이다. 저자는 역사적 진실의 기준으로서 역사학자들 사이에 널리 인정받는 프랑스의 유명 역사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주장을 소개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해석의 진실성은 사실 여부의 확인과 더불어 일관성과 (설명의) 완전성에 달려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기준 역시 유럽 중심주의라는 역사적 한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진실로 나아가는 역사학 내부의 비판 과정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역사의 정치와 역사의 미래
『무엇이 역사인가』는 역사학이 백인남성 엘리트의 전유물에서 여성, 소수인종, 소수민족 역사학자들을 받아들이면서 민주화되어간 흥미로운 과정을 설명한다. 그 결과 저자는, 오늘날 민족국가와 세계화된 세계에서 역사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에서 거대한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기념물과 교과서 논쟁에서 보듯 의견 불일치가 거세게 일어나지만 이러한 불화가 진실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불화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아닌 건전성을 드러내는 징후이기 때문이다.
1870년대만 해도 역사는 정치사, 특히 과거 엘리트의 역사에 국한되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유럽, 영국의 헌정사를 배우며 정치계와 정부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미국의 역사학과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교수의 채용을 거부했으며, 1999년도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역사학 박사 가운데 백인 이외의 인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7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러한 구성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는 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백인남성 엘리트 중심의 역사학계가 변화하면서 오늘날 역사학은 전통적인 정치사를 넘어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과 새로운 연대를 맺고 있다. 또한 역사학의 발전과 통속적 역사에 대한 관심은 무제중심을 현재로 이동시키고 있다. 이제 역사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배출된 쓰레기부터 오늘날 시드니의 서핑에 이르는 모든 대상을 아우른다. 한편 전 세계적으로 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교육 커리큘럼을 둘러싼 개혁 시도와 거센 반발이 충돌하기도 한다. 타이완에서는 중국 본토의 역사와 구별되는 타이완 역사를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룰지를 놓고 학계와 정부가 갑론을박을 벌이고, 브라질에서 일부 교육자들은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브라질 국민의 역사를 교육시키기를 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과거를 통해 우리보다 앞서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근본적인 지혜를 변하지 않으며, 지혜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필 때 발견한 수 있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