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찰스 다윈’으로 시작하어… 드디어 ‘커트 보니것’까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위대한 영감을 얻다!
남아메리카 동태평양에 있는 ‘갈라파고스 제도’는 19개의 섬과 독특한 해양 생태계로 이루어진 곳이다. 세 개의 해류가 만나고, 지진과 화산 활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해양생물의 보고로 손꼽힐 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무려 1,000㎞나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의 다른 지역과 교류가 적어 그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고유한 생물들이 많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이 고립성은 다양한 분야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신들만의 의견이나 표준만 강조하다가는 사회나 시장에서 고립될 수 있는 뜻의 ‘갈라파고스화’라는 말은 이제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1835년 갈라파고스 제도를 여행했던 찰스 다윈은 그곳의 고유종들을 보고 생물은 생존에 성공한 개체들의 특성을 가지고 진화한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마침내 영감을 받은 또 한 사람은 더 나아가 인류의 멸망과 신인류의 탄생을 그려 내기에 이르렀으니, 바로 미국의 가장 위대한 풍자 작가로 꼽히는 ‘커트 보니것’이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풍자 작가 커트 보니것의
‘보니것식’ 장편소설 『갈라파고스』 출간!
1952년 첫 장편소설 『자동 피아노』로 등단한 뒤 『고양이 요람』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주목받는 작가가 된 커트 보니것은 촌철살인의 유머와 풍자, 세계를 보는 독특하고 기발한 시각으로 수많은 작가와 창작자들에게 존경받는 작가이자, 마크 트웨인의 뒤를 잇는 블랙 유머의 대가로 칭송받고 있다.
또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제5도살장』을 통해 미국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반전(反戰) 소설가로도 자리매김하였다. 그는 블랙 유머, 포스트모던, SF, 풍자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작품들에는 이러한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특정 장르의 작가보다는 차라리 ‘보니것식’ 작품을 쓴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종이책의 새로운 가치를 생각하는 에프(f)에서는 이미 커트 보니것의 유일한 단편소설집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18)를 출간하며 보니것식 유머와 해학, 꿈과 낭만까지 모두 느낄 수 있는 25편의 단편소설들을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욱 길고 깊어진 호흡으로 보니것식 소설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장편소설 『갈라파고스』를 선보인다.
●1986년, 인류의 갑작스런 멸망, 극소수의 생존자들
그리고 새로운 진화의 시작
지금으로부터 약 백만 년 후의 새로운 세상. 그곳에 등장한 베일에 싸인 화자는 우리를 백만 년 전인 서기 1986년으로 데려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과 금융 위기로 인한 세계전쟁은 곧 인류를 종말로 몰아넣고, 아무것도 모른 채 갈라파고스 제도로 유람선 여행을 떠났던 몇몇의 사람들은 우연히 한 섬에 좌초되어 고립되면서 종말로부터 살아남아 완전히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다.
커트 보니것은 『갈라파고스』에서 진화론의 대명사격인 갈라파고스를 소재로 삼아 인류의 멸망과 신인류의 탄생 과정을 그만의 독특한 서술 방식으로 보여 준다. 독자들은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과 진화의 여정에 함께하며, 그가 비판하고 풍자하고자 했던 것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끝까지 놓지 않았던 희망에 대해 여실히 느끼게 된다.
“3킬로그램짜리 뇌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한때는 거의 치명적인 결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두 번째 질문도 제기하는 바이다.
“과거 그 당시, 지나치게 정교한 우리의 신경 회로를 제외한다면, 우리가 어디에서나 보고 들었던 그런 악행들이 비롯된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다른 근원은 없었다. 그 엄청나게 커다란 뇌만 뺀다면, 이곳은 아주 무해한 행성이었다.”
-본문 중에서
『갈라파고스』 속 화자는 인류의 멸망 원인으로 ‘엄청나게 커다란 뇌’를 꼽는다. 조금씩 큰 뇌를 가지도록 진화한 인류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만들어 내고 결국 전쟁을 통한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보니것은 미스터리한 화자의 입을 빌려, 형편없이 크기만 한 인류의 뇌와 그 뇌가 말미암은 무수히 많은 인간들의 잘못을 끊임없이 비꼬고 풍자한다. 심지어 백만 년 후의 새로운 인류는 뇌의 크기가 점점 작아져 현 인류처럼 쓸데없는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진화’하기에 이른다.
●커트 보니것이 바라보는, 애석하게도 이미 엉망이 되어 버린 모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
“내가 굳이 말해야 하겠니? 공중에서 봤을 때 한때는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이 행성이 지금은 부검대에 노출된 불쌍한 로이 헵번의 병든 장기들과 비슷하단 것을?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인간들의 도시는 오직 성장만을 위해 성장하고 뭐든 닥치는 대로 다 먹어 치우며 망가뜨리고 있는 암세포들과 비슷하단 것을?"
-본문 중에서
커트 보니것이 비판하고자 했던 사회의 모습은 화자의 아버지가 화자에게 건넸던 위의 말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채 백만 년에 걸쳐 인류의 진화를 목도하고 생존자들을 굽어보던 화자처럼 보니것도 결국 희망을 놓지 않는다. 생존자들은 절망 속에서도 차근차근 그들만의 사회를 건설하였고, 서로를 보듬고 위하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아 진화의 가능성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발전을 위하여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얻기 위해 잔악무도하게 전쟁을 하며, 편리한 생활을 명목으로 과도한 낭비를 일삼는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구축한 고도의 문명도 결국에는 특정 집단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며, 지구 곳곳에서는 아직도 굶주림, 질병, 전쟁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많다. 커트 보니것은 일찍이 『갈라파고스』에서 풍자와 블랙 유머를 통하여 이러한 행태들을 경고하였고, 그 경고는 지금 여기에서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마냥 남의 일이라고만은 치부할 수 없는 보니것식 20세기 최후의 인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 그 진화의 여정에 함께해 보기를 바란다. 충격적인 신인류의 모습과 백만 년간의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스터리한 화자의 정체에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