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코르셋 : 도래한 상상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이민경 신작 ★★★★★
행동하는 페미니즘이 폭발하는 현장,
그 한복판에서 써내려간 가장 정교한 탈코르셋 담론
“여성과 여성성은 무관하다”
탈코르셋: ‘꾸밈 중지’의 실험
2018년 초 SNS에서는 특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여성들 사이에서 ‘#탈코르셋_인증’이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번져나갔다. 아이섀도가 산산이 부서져 있고 립스틱이 잔뜩 짓뭉개진 사진들에 붙여진 이 해시태그는 ‘탈코르셋 운동’의 확산을 알리는 징후적 표현이었다. 화장이나 하이힐, 치마와 같이 여성에게 부과되는 ‘꾸밈’을 통칭하는 ‘코르셋’이란 표현의 반대급부로, 여성의 꾸밈을 전면 거부하는 운동을 ‘탈(脫)코르셋’이라 일컫게 되었다. 탈코르셋은 여성 각자의 몸을 도구로 삼는 실천적 운동으로, 이는 꾸밈 강요를 비판하는 다른 흐름과 이 운동이 가장 구별되는 차이점이다. 탈코르셋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 셔츠와 바지를 입으며, 머리를 짧게 깎는다. 단발 대신 쇼트커트, 쇼트커트 대신 투블럭으로,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영역까지 적극 침범하다. 탈코르셋 운동은 ‘규범적 여성성’을 이탈해 금기를 위반한다는 분명한 기치를 담고 있다.
13개의 인터뷰, 13개의 서사
탈코르셋 운동의 현장에서 써내려간 1년의 기록
‘왜, 굳이, 이렇게’ 탈코르셋을 하는가. 페미니스트는 꾸밈노동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선택의 자유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꾸밈을 전면 거부하자는 탈코르셋 운동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할 것인가. 작가 이민경은 온라인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되는 모습을 보고 이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탈코르셋 운동은 3년 여간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일해온 작가에게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부분으로 인해 생경함을 안겨주었다. 작가는 이 운동을 독해하기 위해 2018년 초여름부터 2019년 늦봄까지 1년여, 탈코르셋을 실천하는 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서울, 경기, 대전, 전주, 대구에서 100명 남짓한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스무 명 가까운 여성들과는 한 번에 두세 시간가량 인터뷰했다. 유치원 교사, 대학원생, 제조업 분야 직장인, 여성주의 동아리 회원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인터뷰에 응했고, 이들이 운동에 동참한 계기는 다양했다. 다이어트와 폭식증에 시달리던 민주는 친구 단풍의 권유로 탈코르셋을 접했다(80쪽). 중학교 교사 혜인은 탈코르셋에 동참하는 학생들에게 자극을 받아 운동에 뛰어들었다(108쪽). 여덟 살 딸을 둔 보경은 유아 화장품 산업의 확대를 피부로 접하며 탈코르셋을 지지하게 되었다(371쪽).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여성이 남성에게 폭행을 당한 ‘이수역 폭행사건’ 또한 많은 여성들이 탈코르셋 운동에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 역시 이즈음 머리를 잘랐다.
“나 역시 적당히 자르려던 머리를 훨씬 더 짧게 잘랐다. 여성이 머리를 잘랐다는 사실이 표적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여성이 머리를 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드러내지 않고는 폭력에 맞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젠더폭력은 성별 규범을 위반한 자에게 주어지는 폭력이다.” _242쪽
이 책은 탈코르셋을 실천하며 일상과 생애 전체에서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작가가 탈코르셋 운동의 현장에서 채취한 13개의 인터뷰는 그래서 한편 한편이 ‘몸의 이동’에 관한 13개의 서사가 된다. 이 서사들은 탈코르셋이 여성 개개인의 일상에서 구현되는 다채로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며, “안 꾸미면 될 걸 가지고 운동씩이나?”로 대변되는, 탈코르셋에 관한 피상적이고 평면적인 이해를 단숨에 일축시킨다.
꾸밀 자유 vs 꾸미지 않을 자유
양쪽 자유의 무게는 평등한가
탈코르셋은 ‘외모 지상주의’ 대신 ‘외모 다양성’을 추구하며, 단순히 ‘꾸미지 않을 자유’를 넓히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기존의 흐름을 적극 비판하며 터져 나온 운동이다. 외모 지상주의나 외모 강박은 사회문제로 여겨지지만, 여성 개개인이 행하는 꾸밈은 취향이나 기호와 같이 개인적인 문제로 여겨져, 꾸밈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은 다양한 찬반양론에 휩싸여왔다. 여기서 ‘선택의 자유’는 핵심 쟁점이 된다. 여성에게 ‘꾸밀 자유’가 있는 만큼 ‘꾸미지 않을 자유’ 또한 주어지는가?
실제로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여성이 삶에서 감수하는 불이익의 정도는 단순히 성가신 간섭을 듣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얼굴을 드러내고 탈코르셋을 선언한 유튜버 배리나가 끊임없는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실정이 또 다른 예일 것이다. 특히나 서비스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의 경우, 투쟁에 참여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위협은 신체적 폭력부터 생계 위협에 이르기까지 결코 경미하지 않다. _277쪽
이 책은 ‘규범적 여성성’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이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사회·문화적 압력에 의해 어떻게 고통받으며 어떤 방식으로 처벌받는가를 많은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이는 여성 스스로 ‘선택’해서 입었다고 믿었던 ‘코르셋’을 직접 벗어던지지 않았다면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지점이다. 실제로 탈코르셋 운동은 개인의 사적 영역을 존중하는 것을 운동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동료 여성에게 탈코르셋에 동참할 것을 권하는 압력, 즉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탈코르셋 운동의 전략은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이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민주와 단풍 역시 친구로부터 ‘머리를 자르라’, ‘코르셋을 벗으라’는 ‘강요’를 직접 당한 경우였다(74쪽). 페미니즘을 접한 여성들은 스스로의 변화를 실감한 이상 ‘바꾸기 위해 움직이자’는 권유를 단순히 사적 영역의 침해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여성들이 심각한 외모 강박이나 폭식증 등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이는 탈코르셋 운동이 꾸밈을 줄이라는 권유 대신 전격적으로 중지하는 강경한 접근을 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탈코르셋 운동은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측면에 집중하기보다 개인의 선택이 만들어지는 데 관여되는 사회·문화적 압력에 주목한다.
‘걸그룹 네이티브’ 세대에게 메이크업, 다이어트, 성형이
과연 개인의 자유이자 선택일까
탈코르셋 운동을 주도하는 연령대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다. 작가 자신을 비롯해 20대 중반 이후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계기가 요즘 10대가 “형광펜을 틴트 대신 바른다”는 말이었다. 과거 학교에서 꾸밈을 금지했다면, 오늘날 학교에서 10대들은 또래와 미디어로부터 형성되는 꾸밈 압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2010년 초반부터 저렴한 화장품을 판매하는 로드숍이 대거 등장하며 확대된 뷰티 산업 또한 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며, 아직 성인기에 접어들지 않은 여성에게도 꾸밈 압박의 문화를 형성해왔다. 한국 뷰티 산업이 공략하는 나이대는 점점 내려가고 있다.
“사실상 여아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고삐에 매여 끌려가다시피 해요. 미용 산업 쪽으로요. 태어나서 선물받는 옷의 형태도 너무 다르고, 약간만 크면 메이크업 키트를 장난감이랍시고 팔고, 아이들이 네일 케어를 받을 수 있는 키즈카페가 있고, 놀이공원에서도 공주 판타지, 그러니까 메이크업을 하고 퍼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몇만 원에 팔죠. 이렇게 어린 나이의 여아들에게까지 미용 산업이 손을 뻗치고 있고, ‘예뻐질 것’을 강조하는 마케팅과 문화가 성장기 여자들이 자기 몸에 대해 강박이나 혐오를 갖도록 만들기 쉬운 마당에 ‘아이의 선택’ 운운하는 것은 불공정한 파워 게임을 간과하는 거예요.” _370~371쪽
키즈 뷰티 유튜브의 확산을 걱정하면서도, 선택의 자유를 억압받으며 자라났기에 아이에게도 욕망이 있음을 존중하고자 하는 어머니가 어린이 화장 문제를 읽는 주된 방식은 ‘막을 수 없다면 제대로’이다. 그러나 이는 아이의 안전을 우려하고 또래집단으로부터의 배제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불안을 이용한 산업이다. 한국 사회에서 탈코르셋 운동의 등장은 2010년 초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뷰티 산업의 확장과 무관하지 않으며, 운동에 동참하는 이들은 이러한 산업과 경제에 대항하는 의미를 간과하지 않는다.
“선을 넘어야 한다. 넘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이처럼 탈코르셋 운동은 한 개인의 삶이 변화하려면 사회적 차원의 움직임이 반드시 필요함을 지적하며, 여성에게 꾸밈 압력을 형성해내는 사회·문화·경제의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한다. 아름답기 위해서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이제 전혀 당연해지지 않으면서, 남성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행하는 뷰티 산업과 패션 업계 전반의 문제, 남성의 타자로서 자기를 대상화는 데서 비롯된 이성애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이르기까지 담론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처럼 구체적 맥락 위에서 등장해 특수한 모습을 띤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한 개인은 다양한 변화를 경험한다.
“선택의 자유를 넓히는 접근으로는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꾸밈 압박을 해소할 수 없다는 인식, 꾸미지 않을 자유를 선택해도 여성에게는 사실상 그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는 발견, 그러나 꾸밈을 중단한 이후로 그간 수행하던 행위를 잊음으로써 경험한 자유, 후순위로 미루어졌으나 뒤늦게 감각한 고통, 왜곡된 자기인식으로부터의 탈출, 패션 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선망했다는 자각, 꾸밈을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의 전부로 보았던 협소한 시선에 대한 반성, 위반을 거듭함으로써 얻은 존재에 대한 재정의까지, ‘여성은 왜 당연하게 화장을 하는가’ 물었을 뿐임에도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전제까지 다시 물었다.” _289쪽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가 안기는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이던 여성은 이제 코르셋을 벗는 행위를 통해 시각을 확장하고 각자의 몸이 세계에 연루되었다는 자각을 얻게 되었다. 2015년 전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각계각층의 여성들로부터 여성주의가 퍼져나가고, 2017년 시작되어 3년째 전파되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 각자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탈코르셋 운동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탈코르셋 운동은 규범적 여성성에 대해 ‘사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실천’을 행한다. 그리하여 코르셋을 입었을 때에는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고통을, 코르셋을 벗음으로써 또렷이 감각하게 된다. 이 책은 제3자의 입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서술하고 해석하며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탈코르셋 운동의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운동으로 ‘인해’ 얻게 된 살아 있는 지식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탈코르셋 운동을 통과하며 작가가,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이 몸으로 얻은 지식을 오롯이 담아낸 이 책은, 지금 페미니즘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탈코르셋 운동에 관한 가장 내밀하고도 정교한 담론의 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