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런틴
“한마디로 미친 책이다. 당신 독서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지적 유희의 끝판왕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건투를 빈다.”-김상욱(물리학자·〈알쓸인잡〉 과학박사)
“추리극, 첩보극, 생리학, 양자역학, 결정론, 형이상학을 모조리 한 소설에 때려넣고도 재미를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렉 이건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김겨울(작가·유튜브〈겨울서점〉운영자)
과학박사 “김상욱”, 북튜버 “김겨울”이 추천하는 〈SF계의 바이블〉
원서 출간 30년·국내 출간 20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
최저가 27,000원, 최고가 80,000원. 책값으로 치르기엔 너무 높아 보이는 가격대다. 그러나 이 돈을 주고 기꺼이 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10년 전 절판된 『쿼런틴』 중고 도서 구매자들이다. 이들 중엔 〈알쓸신잡〉과 〈알쓸인잡〉 등에 출연해 “물리를 다정하게 알려주는 과학박사”로 친숙한 김상욱도 있는데,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쿼런틴』을 다루며 그 첫머리를 아래와 같이 뗀다.
“그렉 이건의 『쿼런틴』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절판되었으나 마니아들 사이에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원래 가격의 두 배는 보통이고, 서너 배를 호가하는 경우도 흔하다.”
-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공부』, 동아시아(2016), p. 198
이처럼 『쿼런틴』을 탐내는 SF 마니아는 국내에만 있을까? 『쿼런틴』은 1992년에 출간된 이후 14개국에 수출되었으며 최근까지 꾸준히 재출간되어 오고 있다. 심지어 원서인 영문판은 10년에 한 번꼴로 두 차례나 재출간될 정도다. 이토록 오랜 시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쿼런틴』이 호출되었던 이유가 뭘까? 이 책이 가진 문학적 가치나 역사적 의미가 대단해서도 그렇겠지만, 김상욱이 추천사를 통해 밝힌 것처럼 신비롭게 여겨질 만큼 재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결국 이해는 안 되는데 재미있어 책을 놓지 못하는 참으로 신비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다시 또 의문이 든다. 그토록 ‘신비한 힘’을 가진 책인데 어째서 절판됐던 것일까? 여기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쿼런틴』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시대를 잘못 탄 비운의 명작’이라는 점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쿼런틴』이 처음 한국에 소개됐던 2003년엔 김상욱과 같은 “지적인” 독자만 SF를 읽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2022년 현재엔, 김겨울과 같이 편식하지 않는 “힙스러운” 독자들, 나아가 SF라는 장르가 아직 낯선 “전반적인” 문학 독자들조차 SF를 읽고 있다. 김겨울이 추천사를 통해 설명한 것처럼, 『쿼런틴』은 “추리극, 첩보극, 생리학, 양자역학, 결정론, 형이상학을 모두 다루고도 재미를 유지하”기 때문에, 이 모든 독자를 충족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이야말로 한국 독자가 그렉 이건을 만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올해 8월 출간돼 많은 사랑을 받은 『내가 행복한 이유』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전 세계 SF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라고 해서 꼭 재출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쿼런틴』이 지금 다시 읽혀야 할 이유를 설명할 때는 해당 작품이 가진 문학적 가치나 역사적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렉 이건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외국 작가인 “테드 창”과 한국 작가인 “김초엽”에 영향을 끼친 ‘작가들의 작가’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그렉 이건이 가지고 있는 권위는 수상 이력과 판매고를 고려한다면 국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즉, 그렉 이건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SF의 거대한 강줄기 중 하나라는 점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데뷔작인 『쿼런틴』은? 바로, 그 거대한 강줄기가 시작하는 곳이다. 『쿼런틴』이 “SF계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F를 대표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작가의 시작을 알리는 책. 그것이 20년 만에 새롭게 번역해서라도 『쿼런틴』을 재출간해야 하는 이유다.
『쿼런틴』은 그렉 이건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번역한 기획자이자 번역가인 김상훈의 개역을 거쳐 20년 만에 독자와 만난다. 20년이란 세월 동안 번역문에 켜켜이 쌓여온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지금 시대의 문학 감수성에 걸맞은 세련된 표현으로 전면 윤문했다. 동시에 지난 20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난해하다’라는 독자 의견을 반영하여, 다소 낯선 용어로 다소 복잡하게 설명되었던 과학 설명 파트를 좀 더 쉽게 읽히도록 개편했다. 그 결과, 구버전과 신버전을 전부 읽은 김상욱이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감탄할 만큼 완전히 새로운 『쿼런틴』이 탄생하게 됐다.
『쿼런틴』은 〈주관적 우주론〉 3부작의 1부다. 허블은 『내가 행복한 이유』를 비롯한 그렉 이건의 중‧단편 전체, 그리고 『쿼런틴』에 이어 2부 『순열 도시』, 3부 『비탄』을 펴냄으로써, 더욱 크고 뚜렷하게 뻗어나가는 그렉 이건이라는 강줄기를 한국에 만들고자 한다.
“인류가 외계의 검은 구체에 의해 ‘격리(쿼런틴) 상태’가 된다”
양자역학을 토대로 인류를 ‘우주 파멸’의 존재로 구축한 충격적 상상력
작품 제목인 ‘쿼런틴(Quarantine)’은 ‘격리’, ‘검역’, ‘차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내에서도 자주 언급된 단어인데, 『쿼런틴』에선 그 단어가 조금 다르게 쓰이는 것이다. 현실에선 전염병으로부터 인간을 격리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쿼런틴』에선 ‘인간으로부터 우주를 격리한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인간이 우주 역병 병균의 숙주라도 된다는 것일까? 결말로 가면 그 말도 틀린 건 아니게 되지만, 초기 설정상으로 인류가 격리된 이유는 우주를 파멸로 이끌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특수 능력’의 작동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양자역학적 지식이 다소 필요하지만, 『쿼런틴』을 문학작품으로 즐기는 데엔 그런 지식은 전혀 필요 없다. 인류가 ‘우주 파멸’의 존재가 되었을 때의 외계 종족의 반응, 그 외계 종족의 강제 격리를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인류의 반응, 혼란에 빠진 지구에서의 각 개인이 겪는 변화와 갈등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사를 꾸준히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양자역학에 대해 체득하게 된다.
『쿼런틴』을 읽고 나면 이 작품을 쓰기 위해선 양자역학에 대한 고차원적 이해가 필요했으리라 짐작하게 된다. 양자역학을 너무도 쉽고 정확하게 소설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그렉 이건은 양자역학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토대로 『쿼런틴』을 썼다. 위와 같은 맥락으로, 김상욱은 강연장에서 “물리학자라면 (경외감 때문에) 울면서 볼 책”이라 밝힌 바 있다.
양자역학은 실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은 단어일뿐더러 우리가 친숙하게 체감하는 고전역학을 거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소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쿼런틴』을 읽을 때 양자역학에 대해 천착하지 않고 서사적 재미만 추구하더라도 전혀 문제는 없다. 하지만 『쿼런틴』에서는 양자역학을 그렇게 어렵게 다루지도 않거니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읽으면 SF 특유의 ‘경이감’까지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양자역학을 공부한다기보다 체험해 본다는 마음으로 읽어나가기를 권장한다.
『쿼런틴』에서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지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때다. 『쿼런틴』의 세계에서 온 우주는 ‘양자 중첩’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이 ‘관측’한 존재의 양자 중첩을 깨뜨려 하나의 상태로 귀결시킨다. 인간의 시선이 닿은 존재는 중첩돼 있던 무한대의 가능성을 잃고 딱 한 가지의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쿼런틴』의 세계에선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이 (인류를 포함해) 난도질당한다. 이 엄청난 세계관 앞에서 양자역학적 설명은 사소하다. 그러나 이 사소한 설명을 이해하면 이 비현실적인 세계를 무척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재난‧디스토피아〉,〈포스트휴먼‧초인물〉,〈추리‧미스터리‧하드보일드〉
모든 시대와 문학 장르를 초월한, ‘작가들의 작가’의 마스터피스
2003년 『쿼런틴』이 처음 출간됐을 당시, SF 독자들이 받았던 충격이란 실로 엄청났던 것으로 보인다. 2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재출간에 대한 독자들의 요청이 이어졌으니까. 이처럼 지속적인 요청과 찬사를 받고 결국 재출간하게 된 『쿼런틴』의 힘이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 무엇보다도 문학적 재미에 있다. 『쿼런틴』은 ‘양자역학과 하드 SF’라는 높은 허들을 가져온 만큼, 독자가 그 허들을 넘는 과정에서 지루하지 않도록 온갖 문학 장르의 서사와 분위기를 빌려와 쓴다. 『쿼런틴』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장르는 〈재난‧디스토피아〉, 〈포스트휴먼‧초인물〉, 〈추리‧미스터리‧하드보일드〉 이렇게 세 가지다. 이렇듯 최소한 세 개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니, 『쿼런틴』을 수입한 14개국의 표지는 전부 제각각이다.
『쿼런틴』의 도입부는 ‘재난 서사’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잘 담아내고 있다. 2034년 어느 날, 지구의 밤하늘에서 별들이 완전히 사라진다. 지름이 명왕성 궤도의 두 배나 되는 정체불명의 검은 구체 ‘버블’이 태양계를 완전히 감싸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전 세계적 혼란을 초래했지만, 그 혼란에 대한 대항마로서 디스토피아 소설에 나올 법한 기괴하고 강압적인 정부가 등장할 뿐 의외로 큰 문제 없이 30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사람들은 별이 사라진 밤하늘을 일상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쿼런틴』의 캐릭터 및 초반 서사는 ‘추리‧미스터리 서사’와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잘 조합하고 있다. ‘버블’ 출현 후 30년 후인 2066년. 전직 경찰관이자 사립 탐정인 ‘닉’은 실종된 한 여성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여성은 혼자서 거동조차 힘들 정도의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그녀가 생활하던 병원은 24시간 감시체제 아래에 있었단 것이다. 닉은 이 여성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버블’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주인공인 닉의 캐릭터엔 ‘포스트휴먼 특유의 고찰’과 ’초인물 세계관’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쿼런틴』에서는 외계의 검은 구체 ‘버블’에 버금갈 만큼 중요하게 다뤄지는 SF적 요소가 있으니, 바로 최첨단 유전공학과 나노공학의 산물인 ‘모드’다. 모드라는 일종의 신경 회로를 뇌에 장착하면 나노로봇을 통한 신경계의 재배열이 가능하며, 이는 곧 인간의 몸과 의식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모드를 장착한 닉은 내가 방금까지 쫓고 있던 적에게 충성하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어도 전혀 슬퍼하지 않는다.
김겨울이 추천사에서 말했듯이, “흥미진진한 추리극을 따라 가다보면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뇌와 정신의 관계라든지 삶의 무한한 가능성 같은 심오한 주제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쿼런틴』은 김겨울의 표현처럼 정말이지 “롤러코스터” 같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어려운 과학 이론에 머리 아플 새가 없을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마스터피스에 대한 감탄하기 바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