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차토를 쫓아서
1979년 전미도서상 수상작 국내 초역
베트남전쟁 탈영병을 쫓는 어느 분대의 여정
『카차토를 쫓아서』를 전쟁에 관한 소설이라 부르는 건 『모비 딕』을 고래에 관한 소설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뉴욕 타임스
1978년, 30대 초반의 작가가 생애 두 번째 소설로 받기에는 언뜻 과하다 싶은 평가지만 저것은 훗날 이 작가에게 쏟아질 찬사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이듬해인 1979년 『카차토를 쫓아서』는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고전의 반열에 올랐고, 그 뒤로도 팀 오브라이언은 자신을 부단히 입증해 1990년, 전쟁소설을 넘어 미국 소설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될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발표했다. 그는 이제껏 일곱 권의 장편소설과 두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는데, 반세기 가까운 경력에 비하면 과작이지만 그는 성취 면에서 어느 고전 작가 못지않은 지위를 자랑한다. 그의 작품들은 헤밍웨이 이후 전쟁소설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뿐더러 미국 AP(대학 과목 선이수제) 과정의 필독서 목록에 포함되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작품 세 권이나 일본어로 옮긴 역자다. 2020년에는 팀 오브라이언 개인에 관한 다큐멘터리 [The War and Peace of Tim O’Brien]이 만들어졌고 2021년에는 톰 하디를 주연으로 그의 대표작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의 영화화가 예정돼 있다.
오브라이언의 장편 『카차토를 쫓아서』가 난데없이 나타나 1979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했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20세기의 절반을 마감하는 소설로 이보다 훌륭한 작품은 없다고 보았다.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카차토를 쫓아서』는 베트남전쟁 도중 걸어서 파리로 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 카차토라는 대원을 쫓는 한 분대의 이야기다. 베트남전쟁의 풍경과 일상, 인간관계, 내분, 그리고 무엇보다 베트남에서 라오스, 버마, 인도, 아프가니스탄, 이란, 터키, 유럽 다수 지역을 거쳐 파리에 다다르는 여정이 긴장과 유머와 진지함이 고루 섞인 팀 오브라이언의 탁월한 글쓰기로 그려진다. 이 책은 입체적인 인물과 사건, 전쟁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잘 연출된 영화 혹은 드라마처럼 누차 읽을수록 여러 디테일로 진한 맛이 우러나는 이야기다. 『카차토를 쫓아서』는 이번이 국내 초역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카차토를 쫓아서
탈영병을 쫓는지 좇는지 모를 이상한 모험
10월 말이 가까울 무렵 카차토는 전쟁을 떴다. “녀석이 사라졌어요,” 닥 페럿이 말했다. “떨어져 나갔어요, 떠났습니다.” 코슨 중위는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중위로 있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코와 양쪽 볼의 정맥이 헐었다. 허리도 부실했다. 그는 한때 소령 진급을 앞둔 대위였지만 한국과 베트남에서 보낸 지루한 14년과 위스키가 모든 걸 끝장냈고 이제는 그저 설사병에 시달리는 늙은 중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녹색 양말과 녹색 팬티 외에는 헐벗은 채 사원에 누워 있었다. “카차토요,” 닥이 반복했다. “그 아이가 우릴 떠났어요. 미지의 세계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중위는 일어앉지 않았다. 그는 한 손으로 배를 틀어쥐고 다른 손으로 붉은 담뱃불을 둘러막았다. 그의 두 눈 표면은 촉촉했다. “파리로 떠났습니다,” 닥이 말했다.
-19쪽
1968년 10월 우기로 접어든 베트남, 늘어지는 전쟁처럼 질척거리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뜬금없는 탈영 소식이 보고된다. 걸어서 파리로 간다는 짧은 말을 남기고 사라진 카차토. 왜, 어떻게 달아나려는지 알려진 것이 없어 보고를 미룬 코슨 중위는 서둘러 분대를 꾸리고 카차토의 뒤를 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카차토는 쉬이 잡히지 않고, 분대는 그의 흔적을 쫓아 할 수 없이 먼 걸음을 계속하게 된다. 베트남을 벗어나 라오스, 버마, 인도 등 여러 동남아시아 지역을 지나고 터키, 그리스, 그 밖에 파리로 이어지는 여러 유럽 지역을 전전하는 여정. 그 길에서 그들은 세 명의 여자 피난민을 만나고, 땅굴에 빠지고, 유령처럼 실체가 보이지 않던 베트콩을 맞닥뜨리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체포되고, 탈출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들은 카차토를 잡아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카차토를 잡으려는 것인가, 카차토를 따라 달아나는 것인가.
총 마흔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카차토를 쫓아서』는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하나, 어느 날 부대를 무단이탈한 카차토와 그를 뒤쫓는 일곱 명의 보병 분대 이야기. 둘, 하룻밤의 철야 경계 근무 이야기. 셋, 주인공 폴 벌린이 겪은 징집 전후의 일들과 여러 죽음, 여러 동료 관계, 여러 감정으로 복잡한 전투지에서의 경험.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처음엔 제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하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로 틈새를 메워주고, 그렇게 등장인물들과 사건들 각각에 나름의 명분과 이유를 마련하면서 하나의 꽉 맞물린 이야기로 완성되어간다.
베트남전쟁에 관한 평생의 집요한 글쓰기
그러나 전에 없던 방식의 흥미로운 글쓰기
『카차토를 쫓아서』는 베트남전쟁의 소설적 초상으로서 흠을 찾기는커녕 이보다 낫기가 어려울 것이다. 장면들의 홈과 촉을 매우 신중히 깎아 전체가 아주 단단히 들어맞고 제대로 광이 나는바, 한 쪽 한 쪽 버릴 것 없는 페이지들이 이 재료가 저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무게를 띠는지 전해준다.
-존 업다이크, 뉴요커
팀 오브라이언이 지금껏 낸 책은 아홉 권, 소설과 산문집 할 것 없이 그의 모든 책은 20대 초반에 징집되어 다녀온 베트남전쟁의 경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데뷔 때부터 찬사를 받고 30대에 이미 손꼽히는 미국 작가가 되는 큰 성취를 이룬 뒤에도 그는 중요한 건 그런 성취가 아니라는 듯 끊임없이 베트남전쟁을 노리고 글을 썼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었을 테지만 이 전쟁이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없던 일처럼 잊히는 게 더욱 분했을 것이다. 이 책에 부록으로 실린 대화에서 그는 말한다. “전쟁은 우리한테 다급한 재난이라며 판매됐어요. (…) 경기가 호황이죠. 미국 10대 아이들이 탄 자전거가 베트남 1번 국도를 돌아다녀요. 하노이의 카페에서는 관광객들이 차가운 코카콜라를 마시고요. 재난이요? 300만 명이 죽었어요. 우린 졌고요. 빌어먹을 놈의 재난은 어디 간 거예요?”
베트남전쟁을 그리는 데 평생을 쏟은 그의 집요함은 그의 글쓰기에서도 드러난다. 교차편집, 플래시백, 디졸브, 복선, 맥거핀. 팀 오브라이언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못 영화적이라 할 만큼 눈에 선한 이미지들을 글로 선보인다. 기억이 그러하듯 조각조각 존재하는 일들을 퍼즐처럼 맞추어 하나의 커다란 구조물로 만들어내는 건 그의 특기다. 그는 미국의 실수라는 이유로 잊혀버린 베트남전쟁이 세간의 방식으로 말해져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았고, 그래서 전에 없던 방식, 선악도 없고 역사책 같지도 않은 방식으로 그려져야 함을 일찍부터 인지했다. 이것이 헤밍웨이를 염두에 둔 다음과 같은 찬사가 그의 작품에 던져진 이유일 것이다. “20세기에 한 미국인이 집필한 어떤 전쟁소설에도 버금간다.”(아메리카)
아침이 되자 쉰 명의 새로운 대원은 바다를 바라보는, 나무로 된 옥외 스탠드 쪽으로 오열을 맞추어 인도되었다. 검은 교관용 철모를 쓴, 작은 몸집에 슬픈 표정의 상병이 다들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마치 잃어버린 친구를 군중 속에서 찾듯 신병들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상병은 모래에 털썩 앉았다. 그는 신병들을 외면한 채 바다를 가만히 바라다보았다. 그는 말이 없었다. 10분, 20분,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데도 슬픈 표정의 상병은 고개를 돌리지도 끄덕이지도,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파란 바다를 바라다보았다. 모든 게 맑았다. 바다도 맑았고 모래와 바람도. 그들은 옥외 스탠드에 한 시간 내내 앉아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상병은 한숨을 쉬고 일어섰다.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오열을 맞춘 새 얼굴들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좋아,”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 난장판에서 살아남는 법 제1강은 저걸로 끝이다. 너희가 집중했기를 바란다.”
-7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