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지중해를 보았다 - 밥 차리는 남자의 단짠단짠 인생 자문자답
그 남자가 부엌으로 향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였다. 직장에서 일하고, 일과가 끝나면 사람들과 술 한잔 걸치고, 주말이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소파와 한 몸을 이룬 채 TV 리모컨만 이리저리 돌리고……. 그랬던 그가 어느 날 TV를 끄고 거실 소파를 떠나, 식탁을 지나쳐 부엌으로 향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부처님이 제자 1250명과 함께 있다가 밥때가 되자 제자들을 이끌고 발우를 든 채 성으로 들어가 밥을 얻었다. 그러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와 밥을 먹었다. 옷과 발우를 거둔 후 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니…….”
바로 『금강경』 때문이었다.
1250명의 행렬이 성내를 천천히 돌며 공양을 받는 모습, 다시 거처로 돌아와 밥을 먹고, 그릇을 깨끗이 씻은 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연후에야 정좌하는 그 모습…….
남자는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진리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곳이 밥 먹고 설거지하는 일상”이라는 『금강경』의 메시지에 감동하고 감탄했다.
그는 바로 다음 날부터 부엌에 들어가 한 손에 식재료, 한 손에 칼을 들고 거룩하고도 숭고한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일상이 되었고, 부엌은 남자에게 신비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알아차렸다. 부엌이 주는 위로와 안락을.
부엌은 이제 그 남자의 거처가 되었다. 그는 부엌을 통해 잠시라도 삶의 황홀함을 맛본다. 다른 세상인 것처럼.
그래서 날도 채 밝지 않은 새벽.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허술한 차림에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진입한다. 밤새 누구도 건들지 않은 적막한 공간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남자는 깊은 산속을 헤매는 것도 같다. 이슬 맞은 대나무 잎들 파르르 흔들리는, 단아한 숲의 끝자락에 자리한 산사(山寺)를 향해.
그곳에서 남자는 날마다 선(禪)한다.
칼과 도마와 냄비와 프라이팬을 차례로 바꿔 들고, 갖가지 식재료를 씻고 썰고 익히면서 세상을 관(觀)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조용히 살피고 찬찬히 맛본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적었다.
『부엌에서 지중해를 보았다』에는 미역과 홍어, 도다리쑥국과 샐러드, 그리고 기타 등등의 요리와 음식(당연히 술도 포함!)을 통해 달고 시고 쓰고 짠 우리네 삶과 세상을 관조하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양파를 썰다 집을 나간 이유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평범한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하면서 떠올린 갖가지 기억과 추억과 상념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들이라, 그렇다면 왜 그 남자가 양파를 볼 때마다 분노를 느끼는지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가 양파를 볼 때마다 분노를 느끼는 건 바로 어느 늦은 가을의 일요일에 일어난, 뜻밖의 일 때문이다.
별나게 한가한 날. 남자는 동네 시장에 마실 나가 해삼 세 덩이를 샀다. 저녁 준비를 위해 그 해삼을 꺼내 놓고 그는 잠시 고민했다.
날로 먹을까, 익혀 먹을까.
그는 중식당에서 먹어 본 해삼의 풍미를 집에서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해삼야채볶음’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자는 해삼의 배를 가르고 실처럼 생긴 주황빛의 내장을 뽑아낸 뒤, 듬성듬성 썰었다. 냉장고 야채 칸에서 마늘과 브로콜리와 표고, 양파를 꺼내 함께 썰었다.
여기까진 별일 없었다.
그런데 해삼과 야채들을 프라이팬에 들이부으면서 문제가 생겼다. 뒤늦게 합류한 아내가 재료를 볶으면서 내뱉은 무미건조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양파를 너무 잘게 썰으니까 요리가 지저분해지는 거 같아.”
양파 때문에 지저분하다니……. 그는 결국, 집을 나갔다. 그러고는 휘황한 일요일의 밤거리를 홀로, 외롭게 걸었다. 남자는 요리할 때 양파를 너무 잘게 썬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열을 받아 축 늘어진 양파의 모습이 입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변명 또한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월요일 아침, 그는 언제나처럼 아내와 함께 아침을 준비했다. 미역줄기를 먹기로 했다. 미역줄기를 30분 정도 물에 담가 소금기를 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이제 프라이팬에 볶으면 된다. 미역 줄기볶음에 별다른 재료는 필요하지 않다. 당근을 조금 썰고, 비린 맛을 잡기 위해 마늘 두어 개를 다졌다. 그러고는 큼지막한 양파를 하나 꺼내 들었다.
남자는 가지런한 양파채를 가로로 돌려놓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칼을 놀렸다. 잘게 썰어진 양파가 하얀 눈꽃의 형상으로 도마 위에 피어날 때쯤, 그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이 책에는 이처럼 요리 주변, 요리 전후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독자들은 토요일 오전의 한가한 브런치 대하듯 홀가분하게, 그리고 밥 차리는 남자의 실없는 자기고백에 피식~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영혼이 위로되는 푸드 힐링 에세이!
남자는 투박한 식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 씻고, 자르고, 데치고, 볶고, 찌는 동안 광활한 자연이 자신의 집 부엌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팍팍한 도심에 앉은 채 숲과 밭과 바다의 한가운데로 순간 이동을 감행하다니 정말 멋진 일 아닌가.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 또한 그 남자가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추천해 준 임성한 작가(드라마 <하늘이시여> <인어 아가씨> <보고 또 보고> 집필)의 말대로 ‘가슴이 따뜻해지고, 지금은 먹을 수 없는 엄마의 밥상이 그리워지고, 영혼이 위로되는’ 감동과 여운을 선사받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고픈 욕구를 억누르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