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국가들 - 누가 세계의 지도와 국경을 결정하는가
다시 던지는 질문,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
지도에 없지만 실재하는 나라들의 경이롭고 안타까운 이야기
국내에서 단 한 번도 다뤄진 적도 없고 관련 자료도 전무한 주제의 책이 나왔다. 세계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보이지 않은 국가들(Invisible Countries)’에 관한 이야기다. 이른바 ‘정부’, ‘영토’, ‘국민’이라는 국가의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갖췄는데도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들의 실상을 파헤친다. 지구상에서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의 지정학적 배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 상태에 이르게 됐는지, 무슨 까닭으로 변화 없이 유지돼왔는지, 그 흐름 속에서 왜 일부 국가와 민족은 터전을 잡지 못하고 떠도는지, 이 같은 상황이 앞으로의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탐색한다. 저널리스트이자 국제 외교·정책 분석 전문가인 저자가 두 발로 직접 찾아다니며 취재한 결과를 르포르타주(reportage) 형식으로 펼쳐내고 있다.
통상적인 언론 매체의 취재 수준을 넘어선 심층 기획으로 외교 및 국제관계 연구자와 실무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고급 정보를 다룬다. 이 책이 아니면 접할 수 없는 국제 지정학적 이슈를 비롯해 난민 등의 문제를 감성이 아닌 정치적·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특히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민족·국민의 개념에 대한 인식이 재정립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난민, 인권, 국경, 기후, 에너지 등 국제 이슈가 요동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안타까운 이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저널리즘 문학으로 승화돼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할 것이다.
나라가 아닌 나라, 국민이 아닌 국민
왜 나의 조국을 남의 나라가 인정하는가?
사이버 국가도 나라가 될 수 있는가?
영토가 가라앉으면 국가도 사라지는가?
앞으로의 세계지도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장면 #1.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회담을 마친 후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주석과 오랫동안 동안 나눈 의미 있는 대화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한국이 실제로 오랫동안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깜짝 놀란 트럼프의 참모들이 나서서 황급히 이 발언을 수습했다.
장면 #2. 2017년 4월 〈가디언〉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정책 수석고문 시배스천 고카가 유럽 외교관들과의 회담 자리에서 리비아를 세 지역으로 분할하자는 의견을 내놓으며 냅킨을 펼친 뒤 그 위에 새로운 지도를 그렸다고 보도했다. 이를 본 한 외교관이 충격을 받아 쓰러지자 다른 참석자들이 그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장면 #3. 2017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부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발표했다.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의 국경을 보존하고자 애써온 그간의 중립적 입장은 깨졌다.
장면 #4. 유럽의 민족주의 정당들은 2015~2016년 발생한 유례없는 난민 위기 때 프랑스에서 독일과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민족 주권을 되찾겠다는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냈다.
―국가와 국경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오늘날 세계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진실은 우리가 이 지구상의 광활한 땅덩어리 어디에 있건 간에 상관없이 특정 국가 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국가들 사이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지만 어쨌건 대부분의 ‘공인된 국가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동등한 정치체’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지구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나라에 태어났든 훗날 귀화했든 특정 국가의 국민으로 정의된다.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이후 수십 년 동안 전세계 국가들의 국경이 표시된 세계지도는 러시아에 의한 크림반도 합병이나 동티모르의 독립과 같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현재의 정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신생국가를 건설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며, 소수의 세계열강은 서로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국경선을 유지하는 데에만 일치단결해 힘을 합치고 있다.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이 지도 위의 선은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국가인데 국가가 아닌 나라, 국가가 아닌데 국가인 나라
인류 역사를 보다 넓은 안목에서 들여다보면 이 같은 현상은 결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가’와 ‘민족’에 관한 어떤 식의 정의를 내리든 간에 해당 영토에 국가와 국민이 존재해야 마땅하다.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부’, ‘영토’, ‘국민’이 국가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 세 요소를 갖췄는데도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유는 하나다. 다른 국가들이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국제적 인정을 받은 나라인데도 그 국민들은 난민이 되어 전세계를 표류한다. 그뿐인가? 국가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나라가 버젓이 UN이나 FIFA의 회원국으로 등록돼 있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어쩌다가 이런 불합리한 체제를 갖게 됐는가? 그리고 어떤 까닭으로 이를 유지하고자 애쓰는 것인가?
―세계지도가 요동치는 현장
이 책은 국가의 체제를 모두 갖추고도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들, 국가가 될 수 없는 환경이지만 당당히 국가로서 국제 정치에 참여하는 나라들의 면면을 살피면서, 현재의 세계지도가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깊이 요동치고 있는 생생한 현장으로 안내한다. 저자는 이 ‘보이지 않는 국가들(Invisible Countries)’이 처한 난제를 객관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한 국가의 존폐를 결정하는 보편적 권위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현재의 세계지도가 머지않아 이들 지역의 경제·문화·환경의 힘에 의해 변화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실재하거나 (물리적 영토가 없다는 점에서) 가상으로 존재하는 곳들을 다루고 있다. 이 지역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륙들이 ‘국가’라는 상호 배타적인 ‘물리적 영토’로 나뉜다는 그간의 통념을 무너뜨린다. 저자가 직접 다녀오고 경험한 이 ‘보이지 않는 국가들’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세계지도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다섯 지역을 중심으로 각 장마다 ‘국가 밖의 국가’라는 별도의 부록을 구성해 논지를 전개한다.
―보이지 않는 국가
이 책에서 다루는 첫 번째 보이지 않는 국가인 ‘압하지야(Abkhazia)’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분리주의 소수민족 거주지로서, 국제사회가 통상적으로 조지아(Georgia)의 ‘영토’라고 인식하는 곳이다. 압하지야의 사례는 한 국가가 온전한 독립을 성취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의 여부가 주변국들의 지정학적 경합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지구상에 국가라는 체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배적인 형태로 출현해 세계의 땅덩이를 차지하게 됐는지, 압하지야는 어쩌다가 이 국가 체제라는 ‘클럽’에 가입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됐는지 살핀다.
두 번째 보이지 않는 국가인 ‘아크웨사스네(Akwesasne)’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 지대에 걸쳐 있는 원주민 보호구역 성격의 정치체다.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과 캐나다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곳으로, 아크웨사스네의 모호크족(Mohawk) 공동체는 종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라는 체제에 가두려는 미국과 캐나다 정부에 대항해 독립 영토를 확보하고 근근이 생존해왔다. 아크웨사스네의 사례는 국가의 종류가 하나뿐이라는 통념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다.
세 번째 보이지 않는 국가는 소말리아 북부의 반(半)자치 지역 ‘소말릴란드(Somaliland)’다. 국가로서의 요소를 제대로 갖췄는데도 국제사회에서 묵살당하고 있다. 소말릴란드는 오히려 소말리아보다 더 국가다운 곳인데도 여전히 국제사회가 소말리아의 일부로 여기는 비가시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저자는 소말릴란드를 가본 사람은 “소말릴란드가 나라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곳이 국가라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네 번째 보이지 않는 국가는 흔히 ‘쿠르드 자치구’라 불리는 ‘이라크령 쿠르디스탄(Iraqi Kurdistan)’이다. 월드 뉴스의 헤드라인에 단골로 등장하면서도 현재의 중동 지도를 다시 그리려는 시도가 계속 좌절되는 곳이다. 이곳 사례는 중동 지역의 잔혹한 부조리뿐 아니라 현 상태를 바꾸려는 시도에 따르는 무시하지 못할 위험이 무엇인지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다섯 번째 보이지 않는 국가는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Kiribati)’다. 키리바시는 미승인국이 아니라 엄연히 UN 회원국으로서 공인된 국가이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로서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는 나라다. 기후 변화 때문에 정치적 파국이 임박한 나라의 대표적 사례가 됐고, “물리적인 영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도 존속할 수 있는가?” 하는 지정학적 딜레마를 제기하고 있다.
―국가 밖의 국가
저자는 각 장의 말미에 별도로 구성한 이례적인 국가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국가’ 다섯 곳을 각각의 장으로 구성한 뒤 그 사이사이에 ‘국가 밖의 국가’라고 이름 붙인 네 개의 작은 장을 끼워놓았다. 주권에 대한 세간의 통념 전체에 질문을 던지는 고대 가톨릭 교단, 에스토니아의 전자 시민권 프로그램, 구 유고슬라비아의 주인 없는 땅에 유토피아 사회를 건설하려는 몽상적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대담한 기획, 시민권이 의무로 지정돼 있는 세계에서 시민권 없는 사람들이 마주하고 있는 난제들이 이 장에서 펼쳐진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국가 밖의 국가’는 억지로 확립된 세계지도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집단의 사례로, ‘몰타기사단(Sovereign Military Order of Malta)’, 에스토니아(Estonia)의 ‘전자 시민권 프로그램(Electronic Residency Program)’, ‘리버랜드(Liberland)’라는 이름의 자유 시장 유토피아 정치 실험체, 그리고 국민권이 거의 의무화돼 있는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인권을 인정받으려고 투쟁하는 ‘나라 없는 사람들’의 고군분투기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과연 국가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계지도상에 존재하는 국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모습의 국가들로 이뤄지게 될지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특히 이 책이 말하고 있는 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특히 지정학적 이슈에 민감해야 한다. 이 책이 국제관계 및 국제정세를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