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세계사 -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인류의 재앙인 전쟁이 어떻게
인류의 축복인 의학을 꽃피웠는가
현직 의사가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의학 세계사 이야기!
현직 의사인 황건 교수의 신간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 세계사』가 출간되었다. 그동안 국내에는 전쟁사에 관한 책이 셀 수 없이 많이 나왔다. 최근에는 의학 교양서도 적지 않게 출간되고 있다. 하지만 ‘전쟁’과 ‘의학’이라는 두 키워드를 융합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쟁과 의료의 역사를 다룬 교양서는 지금까지 없었다. 저자는 국방부에서 발행하는 『국방일보』에 2017년 1월부터 9개월간 「전쟁, 의술을 꽃피우다」라는 제목으로 총 서른일곱 편의 칼럼을 연재했다. 칼럼이 큰 호응을 얻은 덕분에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시켰다.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 세계사』는 어떻게 인류의 재앙인 전쟁이 인류의 축복인 의학을 발전시켰는지, 고대의 트로이전쟁부터 현대의 이라크전쟁까지 인류의 전쟁이 낳은 의학사의 명장면들을 살펴본다. 전쟁터는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는 참혹한 현장이었지만, 동시에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의 공간이기도 했다. 나아가 전쟁 때문에 발전한 의학 기술은 온 인류에게 희망을 선사하게 되었다. 이 책은 대중적인 의학 교양서답게 어려운 의학 용어를 지루하게 나열하지 않고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들려준다. 의대 진학을 꿈꾸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의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일반적인 세계사 교양서에서는 보기 힘든, 전쟁이나 의학과 관련된 다양한 사진과 삽화 자료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다.
참혹한 전쟁 속에서 꽃피운
의학사의 명장면들을 펼치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사가 격동하는 전환점에는 항상 전쟁이 자리했다.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국면에는 늘 대규모의 전쟁이 벌어졌다. 각 문명이나 국가 단위에서도 전쟁은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전쟁은 우리가 말하는 일반 역사뿐 아니라 ‘의학의 역사’도 뒤바꿨다!
전쟁터에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폭력이 난무한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건 예사고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질병에 걸리거나 전염병이 창궐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육체적 피해는 물론이고 눈앞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광경에 많은 사람이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겪는다.
그러므로 참혹한 전쟁터는 그 어느 곳보다 의료의 힘이 절실하고 의술의 발달을 자극하는 현장이 되었다. 일찍이 고대 로마는 전투에서 손실되는 병력을 줄이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역사상 거의 최초로 의무 부대를 창설했다. 이후로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의 규모와 파괴력이 점차 커지면서 전장에서 의학도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근대에는 과학의 발달과 함께 의료 체계가 좀 더 짜임새 있어지고 전문화되었다. 제1?2차 세계대전 때는 의술이 고도로 정교해지면서 현대 의학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강대국의 세력 다툼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말 그대로 민족의 비극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최신의 의학 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장(場)이 되기도 했다. 현대전에서는 화학무기가 도입되고 병균이 진화하면서 전쟁의 피해가 어느 때보다 막심하지만,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의학은 지금도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인류의 재앙인 전쟁 속에서 어떻게 인류의 희망인 의학이 발전했는지 소개한다. 수많은 인명이 죽고 다치는 참혹한 전쟁 현장에서 도리어 의학 기술이 발전해 인류에게 희망을 선사하게 되었다. 이 흥미롭고도 아이러니한 의학사의 명장면들이 책 속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전장에서 생명 존중을 실천한
의료인들의 ‘인술’에 주목하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여러분도 생명의 소중함과 인술의 숭고함을 느낀다면 나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클 것 같다”(12쪽)고 말했다. 참혹한 전쟁 현장에서 의술이 꽃피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의료인들이 실천한 ‘인술’이었다. 『국어사전』에서 ‘인술(仁術)’은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는 뜻으로 의술(醫術)의 또 다른 말이라고 정의한다.
전쟁터에서 군인은 일개 소모품이기 이전에 고귀한 생명을 지닌 인간이다. 전쟁은 사람을 죽고 다치게 하는 살육의 현장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살리고 보호해야 하는 의료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1864~1949년에 체결된 제네바협약에는 적군이라도 의무병, 의무 부사관, 군의관 등 “의무 요원은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인술을 실천하려는 정신은 서양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전쟁사에서는 인술의 정신이 로마 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군대 내 부상자나 환자에게 관심을 갖고 전문적인 의무 부대를 만들었다. 사람을 살리는 인술은 역사상 의료 개혁을 통해 발휘되기도 했다. 특히 나폴레옹 시대의 군의관들이나 크림전쟁 때 활약한 간호사들이 의료 체계와 전장의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사망자와 환자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19~20세기 전반에는 군의관들이 민간에서 새롭게 개발된 의학 기술과 지식을 전쟁터에서 활용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특히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기술을 고안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다. 한국전쟁에서는 해외에서 파견 나온 군의관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희생적인 인술을 펼쳤고, 베트남전쟁에서는 의료진의 활약으로 시설이 완비된 확장형?가동형 병원 설치, 항공기를 이용한 전상자 후송, 화상 치료법 발달 등 의료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저자는 전쟁 속에서 의학이 발달하는 데 군의관 등 의료진의 인술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지 잘 보여준다. 나아가 온 인류가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데 의학이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 어느 책보다 잘 설명해주고 있다.
악마와 손잡은 과학 기술
과학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다
저자는 전쟁에서 의학과 인술이 꽃피었지만 늘 장밋빛이었던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과학 기술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특히 전쟁이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만든 과학 기술이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책에서는 가장 유명한 예로 20세기 초 독일의 화학자 하버를 소개한다. 당시 하버는 동료인 보슈와 함께 질소 비료를 만들어 식량 생산을 급격히 늘렸고 덕분에 인류를 기아 문제에서 벗어나게 했다. 두 사람의 연구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셈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발견한 화합물은 폭탄의 원료가 되어 제1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지금도 하버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연구 윤리 문제를 논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보다 더 잔인한 일이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기간에 벌어졌다. 독일의 나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십만 명의 포로를 대상으로 끔찍한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 일본의 731부대도 3천여 명의 포로를 ‘마루타’라고 부르며 생체 실험에 희생시켰다. 저자는 이 씻지 못할 인류의 죄악을 소개하면서 “의학이 인간의 가치와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 없이 오로지 이념과 애국심이라는 가면을 쓴 악마와 손을 잡으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129쪽)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베트남전쟁도 인류사의 큰 오점을 남긴 전쟁으로 기록되었다. 미군은 밀림 지대에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펼치는 베트콩을 토벌하려고 고엽제라는 제초제로 밀림을 없애버렸다. 그런데 이 고엽제가 인체에 들어가면 곧바로 증상을 보이진 않지만 5~10년 뒤에 암과 신경마비를 일으키고, 독성이 2세에게 유전되어 기형을 유발한다. 결국 고엽제는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베트남을 비롯해 전쟁에 참가한 여러 나라에서 여전히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위의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 기술은 잘못된 의도로 사용할 경우 인류를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몰고 간다. 전쟁과 의학의 역사에서는 이 진실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인체 실험이나 고엽제 살포, 화학무기 사용 등 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문제나 사회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나아가, 앞으로 인간 사회에 점점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과학 기술을 우리가 어떤 자세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다시금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