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
결혼한 지 오 년째, 같은 집에서 다른 방을 쓰는 여자는
대외적인 아내로서 지극히 만족스러웠다.
교양 있는 단어와 세심한 어조. 살짝 드러나지만, 결코 나대지 않는 지식까지.
그 여자는 세진 그룹의 며느리로서 완벽했다.
그런데 액자 속에 흑백 그림 같던 아내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아저씨랑 저, 정말 결혼했어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쳤다고 해서 저렇게 변할 수 있나?
눈앞에 있는 그녀는 너무나 발랄하고 순진한 여고생이었다. 거친 붓 터치로 형형색색 그려진 야생화 그림 같았다. 유명하지 않아도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만지고 싶었다. 당장 저 목선에 얼굴을 묻고 깨끗한 피부에 흔적을 새기고 싶었다.
‘발정이라도 한 거냐, 너.’
욕망이 섞인 바람이라, 스스로를 비웃어도 충동은 솔직했다.
내가 유부녀라고?
어느 날 깨어나 보니, 햄버거집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지고은이
유리창 너머의 첫사랑 왕자님과 결혼을 해 있었다.
이건 기적이었다. 완전히 로또 당첨이다.
그런데 왕자님의 심장엔 다른 아내가 살고 있어서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데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