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덴마크 - 오해와 과장으로 뒤섞인 ‘행복 사회’의 진짜 모습
이방인이 아닌 덴마크인이 말하는 덴마크
북유럽, 특히 덴마크에 대한 관심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부유하고, 삶의 질이 높고, 복지가 잘돼 있는 나라라는 인식 때문이다. 관심이 지속되면서 덴마크를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모든 것이 완벽한 지상 낙원이거나, 억지로 행복한 척 하는 우울한 사람들이라는 평가들이다.
덴마크는 당연히 지상낙원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 문제는 있다. 그렇다고 가식적인 행복으로 치장하고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도 아니다. 이런 상반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덴마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덴마크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덴마크 대한 이런 저런 상상과 오해는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할 문제다.
《상상 속의 덴마크》는 한국 생활 14년 차인 덴마크인 에밀 라우센이 쓴 책이다. 덴마크에서 사회 복지를 배우고 한국에 와서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있는 에밀 라우센은 그간 덴마크에 대한 수많은 질문을 받아 왔다. 대부분은 복지 국가 덴마크에 대한 질문들이었고, 한국 문화와의 간극으로 쉽게 답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다. 그간 들어온 덴마크에 관한 오해를 풀고 덴마크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담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제야 이해할 수 있는 ‘행복지수 1위’ 사회의 명암
그가 묘사하는 덴마크는 익히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카페 앞에 아기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두고 본인들은 카페 안에서 커피를 즐기는 부모들의 모습. 대학 등록금이 무료이고 만 18세부터 독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주는 복지제도. 휘게라는 독특한 문화를 공유하는 모습.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이미 알려진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으로는 덴마크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했다고, 나아가 행복의 원천을 알았다고 유레카를 외칠 수는 없다.
점심시간을 생략하고 이른 퇴근을 하는 직장 생활, 삶의 규칙처럼 여기는 휘게가 사실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기 위한 노력들이고, 때로는 강박적인 행복 추구가 높은 이혼율과 청소년들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덴마크인만이 설명할 수 있는 덴마크 사회의 이면이다. 그리고 살인적인 세율을 ‘견뎌내는(!)’ 것, 정치인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 구두 계약조차 당연히 실행될 것이라는 생각하는 것, 이 모두가 기독교적 가치관 중 하나인 신뢰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을 듣다 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또,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덴마크인들이 차가운 겨울 같은 감정을 내비쳐 기본적으로 타자를 배척하는 사회가 아닌가 오해를 하지만, 실은 ‘휘게를 함께할 수 있어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는 그들만의 삶의 원칙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사실은 타자를 밀어낸 게 아니라, 그들 사회에 진입하는 방법이 따로 있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덴마크에게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덴마크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의 환경에 맞춰 살아가는 방식을 익힌 그들만의 삶의 노하우가 덴마크식 복지로 발전한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설령 북유럽의 복지 시스템을 따라 할 수 있다고 해도 결코 그들만큼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는 될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상상과 오해를 걷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한 삶의 방식을 어떻게 정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 사회의 아픈 지점에 서 있던 에밀 라우센
에밀 라우센과 덴마크에 관한 책을 기획할 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알베르토 몬디와 함께한 《이탈리아의 사생활》은, 관광지로 친숙하고 선호도가 높은 이탈리아를 현지인 친구가 소개하는 책이었지만, 덴마크에 관한 우리의 관심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은 복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각종 매체와 책에서 꽤 자주 언급됐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출판사의 우려는 기우였습니다. 덴마크인이 말하는 덴마크는 그들과 우리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를 알려줬습니다. 저자인 에밀 라우센이 자라온 환경이 진짜 덴마크의 모습을 알려주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한국인의 눈에 보기에 에밀 라우센은 부족할 게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국가에서 보장해 주는 교육과 복지 시스템의 수혜를 받고 자란데다가, 아버지가 산부인과 의사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밀은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농구 선수를 꿈꿨지만 뇌종양으로 꿈을 접어야 했고, 고환암에 걸려 또다시 큰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의 진로가 사회 복지로 바뀌고 사람들을 돌보는 걸 업으로 삼게 된 이유입니다. 그 덕분에 그는 어린 나이에도 덴마크 사회의 명암을 보다 다양하게 경험하고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에밀 라우센이 경험을 토대로 풀어낸 《상상 속의 덴마크》는 여러 가지 고민을 가진, 완벽하지만은 않은 나라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국인에게는 연습이 필요한 ‘이 순간의 행복’
에밀 라우센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덴마크에서 행복은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도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입니다.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 선택이 왜 행복한가에 대한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해서 행복해져야 하나?”라고 한다면, 덴마크에서는 “그 일을 해서 행복하다”라고 합니다. 전자는 행복하기 위해 다른 일부터 하지만, 덴마크에서는 행복을 위해 다른 이유를 찾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행복의 파랑새가 자기 옆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한 사고방식입니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다소 이해할 수 어려울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행복을 느끼는 연습을 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을 얻는 방식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얻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순간의 행복’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인생의 패자가 된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담보로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미룰 수는 없습니다.
행복은 공동체의 것
한국과 덴마크가 행복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행복이 개인적인 차원인가 공동체의 차원인가에 대한 관점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개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데 익숙합니다. 그런데 덴마크는 사뭇 다릅니다. 공동체 차원에서 행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높은 세율과 복지 제도를 택하는 이유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공동체 차원의 합의와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개인의 희생을 통해 공동체의 존립을 가능케 하고, 덴마크인은 ‘휘게’를 통해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남들과 다투는 일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행복과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자신도 존중받는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우리가 덴마크를 동경하면서도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지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행복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달라서입니다. 에밀 라우센과 《상상 속의 덴마크》를 작업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덴마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복지라는 껍데기가 아니라 행복에 대한 관점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