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어떤 책들은 너무 늦게 도착한 나머지
가장 적절한 때에 당도한 셈이 된다.”
40년 만의 국내 출간으로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팁트리 걸작선 완성본
<체체파리의 비법>에 이은 두 번째 페미니즘 소설집
원서 출간 40년 만에, 2016년 봄 국내 처음 출간되어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체체파리의 비법>에 이어, 드디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두 번째 작품집이자 완성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이 나왔다. 로커스상과 일본 성운상을 수상한 작가의 후기 대표작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포함해 국내서 처음 소개되는 11편의 빛나는 작품들을 가려 모았다.
전작 <체체파리의 비법>에 수록되었던 7편의 작품이 페미사이드(여성학살) 등과 같은 극단적 스토리로 충격과 공포를 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면, 이번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서는 비극적 결말은 그대로지만, 상대적으로 희망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함께 실렸다. 소설집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는데, <제1부 사랑은 운명> 편에서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탈출’을 감행하는 여성들의 위대한 서사시를 다룬 다섯 편의 중단편을 엮었고 <제2부 운명은 죽음> 편에서는 반대로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좌절하는 남성들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일곱 작품이 준비되어 있다.
주어진 운명을 거부한 여성들의 위대한 서사시
소설집의 표제작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서 열여섯 살 소녀는 부모로부터 생일선물로 우주선을 받고 과감히 광활한 우주로 우주선을 몰고 안락한 삶에서 탈출한다. 그 와중에 외계 생명체에 감염되지만, 그 생명체와 아름다운 우정을 키우고 끝내 온 세계의 운명을 위해 장렬하게 자신의 ‘할 만한 멋진 일’을 선택한다. 두 번째 작품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 역시 중산층 주부라는 안락한 삶을 거부한 여성이 모든 사람을 ‘자매’라 부르며, 서쪽으로 우편을 배달하는 배달부를 자처하고 맨발의 인디언 걸음으로 여행을 선택한다.
주어진 온실 혹은 감옥을 ‘탈출’한 여성이 맞이하게 될 결말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 비극적 결말을 결코 패배적으로 다루지 않고, 세 번째 작품 ‘돼지제국’에서 오히려 보란 듯이 더 선명하고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우주로 탈출을 감행하는 여성의 위대한 서사시를 펼쳐 보인다. 그들에게 운명은 사랑이 아니었고, 스스로 선택한 사랑이야말로 자신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페미니즘 SF가 선사하는 달콤한 악몽
<제2부 운명은 죽음>을 알리는 첫 작품 ‘집으로 걷는 사나이’는 이후 여섯 작품에서 펼쳐질 악몽의 시작과도 같다. 어쩌다 사고로 존재할 수 없는 시공간에 처박힌 사내. 그는 수세기를 걸쳐 집으로 걷는다.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도 걸어야 하는, 끝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수백 년을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 악몽과도 같은 운명.
욕망에의 굴복과 좌절로 죽음을 맞이하는 되풀이되는 남성들의 이야기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처럼 닮은꼴이다. 두 개의 파트 제목을 따온 마지막 작품이자, 네뷸러상을 수상한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에서 주인공 수컷 거미가 암컷 거미에게 먹히면서도 끝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은 이 작품집의 백미. 매혹적이고, 달콤하다.
“기억해 줄래, 내 마음의 짝이여? 기억하고 아이들에게 얘기해줄래?
아이들에게 추위에 대해 얘기해줘, 릴리루. 아이들에게 우리 사랑에 대해 얘기해줘.
아이들에게 얘기해줘…. 겨울이 자란다고.”
-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