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 만장일치 선정!
2023년 제2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어떤 믿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반드시 붙들어야 하는 문제였다”
‘탱크’라는 텅 빈 믿음과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적 안간힘에 대하여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장강명의 《표백》,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강성봉의 《카지노 베이비》 등 1996년 제정되어 오랜 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한겨레문학상이 스물여덟 번째 수상작 《탱크》를 출간한다. 총 229편의 경쟁작을 뚫고 당선된 《탱크》는 심사위원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드라마의‘음향기술자’이자 별도의 창작 지도를 받아본 적 없는 작가는 첫 장편소설로 이번 한겨레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심사를 맡은 이기호 소설가는 “허풍이나 과장에 기댈 것도 없이, 이 작품은 근 몇 년간 내가 만나본 이 땅의 수많은 장편소설 공모전 수상작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라고 평했고, 김금희 소설가는 “신인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흡인력 있게 진격하는 소설”이라 격찬했다.
제목 ‘탱크’는 밀폐저장형 구조물의 의미로, 찾는 이 없고 소슬한 마을 야산에 덩그러니 놓인 텅 빈 컨테이너를 가리킨다. ‘믿고 기도하여 결국 가장 좋은 것이 내게 온다’라는 기적의 체험을 위해 마련된 5평 남짓의 기도실. 그러던 어느 날 탱크로 가는 임도 입구 ‘신성한 구역’ 근처에서 큰 산불이 발생하고, 화마에 휩싸인 탱크 안에서 한 남자가 죽는다. 자신이 꿈꾸던 미래가 찾아오기를 누구보다 진실로 믿고 기도하던 그는 왜 죽었을까? 왜 죽어야만 했을까?
《탱크》는 교주도 교리도 없이 오직 공간만 존재하는 ‘자율적 기도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사회에 대한 믿음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진” 시대, 자기성찰에 중독된 시대의 병통과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 하는 개인의 안간힘을 담아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오늘날엔 더더욱 “물과 공기를 담아 가두는 탱크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머물게 하는” 소설이 필요하다며, 《탱크》가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아주 공들여 듣고, 쓰고” 있음을 강조했다. 더하여 강화길 소설가가 호평한 “인물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 안정적 문장과 호흡, 소설을 이끄는 특유의 분위기와 이야기 장악력”은 김희재 작가의 “쓰는 미래”를 더욱 믿음직스럽게 만든다.
도선은 맑은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기차에서 내릴 때마다 그랬듯이 습관처럼 엽서 속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안에서 시작되었다.
최초의 감정, 최초의 자아, 최초의 세계.
그중 오직 최초의 꿈만이 우리 세계의 바깥에 미래를 펼쳐놓았다.
이제 이곳에서 우리는 꿈의 미래를 안으로 끌어온다.
믿고 기도하여 결국 가장 좋은 것이 내게 온다. _11쪽
“너는 언젠가 사람들이 탱크를 신으로 모시게 될 거라고 했지”
독보적 상상력, 입체적 인물, 밀도 높은 이야기 장악력으로
삶의 복판에 자리한 거대한 컨테이너를 그려내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10여 년간 ‘믹싱 엔지니어’로서 다양한 영화와 음반에 소리를 입히고 세공해온 작가의 이력은 《탱크》의 이야기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탱크》에는 탱크를 믿는 사람, 탱크를 믿는 애인을 둔 사람, 탱크를 세운 사람, 탱크에서 누군가를 잃은 사람이 등장하고, 작가의 세밀하고 감각적인 시선은 그들의 동선을 빈틈없이 쫓는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과 입체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 전환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소설은 총 4부에 걸쳐 ‘그날’ 탱크의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1부는 각각의 사연으로 탱크에 모인 인물의 이야기다. 촉망받는 시나리오 작가였지만 긴 슬럼프와 이혼 후의 삶에 부침을 느낀 ‘도선’은 “가장 간절할 때, 가장 믿고 싶은 형태”로 찾아온 탱크에 매료되고, 어김없이 탱크를 찾은 ‘그날’ 거세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맞닥뜨린다. 평범한 공장 노동자인 ‘양우’는 채팅앱에서 만난 ‘둡둡’과 연인이 된다. 그러던 중 양우는 큰 다툼 이후 말없이 사라진 둡둡에게서 한 통의 메시지를 받고 급히 탱크를 방문한다. 최초의 탱크 설립자 ‘루벤’에게 사사 받아 ‘탱크의 시대’를 창립한 황영경과 그녀의 이부자매이자 예약 관리자 손부경 역시 큰불이 탱크를 덮치기 일보 직전이라는 소식을 듣고 탱크로 향한다.
루벤은 웃었다. 사람들이 그 공간을 믿는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텅 빈 공간에서 기도하는 순간,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게 되죠. 그렇게 발견한 새로운 자아가 한 번도 내디뎌본 적 없는 세계로 자신을 이끌면 그때부터는 무엇이든 가능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_65쪽
2부는 ‘그날’의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마침내 탱크에 도착한 양우는 창백하게 죽은 한 남자를 목격하고, 뒤이어 온 도선은 시신을 끌어안고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는 양우를 구하러 탱크에 뛰어든다. ‘사건’ 이후 설립자 황영경이 구속되며 세간엔 ‘소원을 이뤄주는 컨테이너’에 관한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도선은 힘없이 늘어진 손과 발, 거친 울음소리, 분명 아는 얼굴이었던 한 남자의 꿈을 반복해서 꾼다. 2부에서는 둡둡의 아빠 ‘강규산’의 이야기도 조명되는데, 자식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강규산은 끝내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과 마주하게 된다.
강규산이 다시 아이를 만난 건 정확히 68일 후였다. 아이는 지난여름에 보았던 것보다 더 작아져 있었다. 아이를 덮은 하얀 이불은 전처럼 들썩이지 않았다. 아이의 쌔근대는 호흡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규산은 아이의 차가운 발등에 손을 올렸다. 마음이 끝도 없이 내려앉았다. 68일 동안 매일 속으로 곱씹던 말이 있었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가슴에 남아 있는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_131쪽
3부는 둡둡의 죽음 뒤 남겨진 사람들과 새로운 탱크의 이야기다. 도선은 누구보다 ‘미래’와 ‘희망’을 믿던 둡둡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밝히기 위해 그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하고, 양우는 우연히 도선이 쓴 시나리오를 읽고 그녀를 만나기로 마음먹는다. 손부경은 황영경을 대신해 탱크가 있던 마을 이장에게 전소된 탱크의 처분을 부탁하고, 이장은 체념한 듯한 손부경을 향해 “쌔 거 들어오면 그때 또 봐”라는 말을 전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걸까. 황영경은 감옥에 있는데 이곳에 새로운 탱크가 세워지는 게, 그것도 사람이 죽은 바로 그곳, 그 자리에…….
무언가 양우를 조금씩 삶에서 밀어내는 것 같았다. 둡둡도 이랬을까. 둡둡도 이렇게 삶에서 밀려나다가 어느 순간 어어, 하면서 완전히 밀려나게 됐을까. _174쪽
4부는 ‘탱크’의 바깥에서 다가올 미래, 어쩌면 둡둡이 기도하던 가장 밝은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새로운 탱크의 소식을 듣고 자신은 황영경과 ‘믿음의 동행’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손부경은 라이터를 챙겨 집을 나서고, 둡둡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신성한 구역을 다시 찾은 도선은 또 한 번의 화재를 목격한다. 새로운 탱크가 불탔음에도 탱크는 이내 이곳저곳에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하고, 양우는 둡둡을 떠나보내기 위해 도선이 건넨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을 펼친다.
생각지도 않았던 미래가 눈앞에 불쑥 나타나 강규산과 강규산의 전부를 통과해 과거로 행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걸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_267쪽
“소설을 따라 지금을 ‘탱크의 시대’라 불러도 좋겠다”
재해, 퀴어, 종교, 청년 세태 등 오늘의 주제를 넘어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거침없고 신중한 낙관의 서사
《탱크》는 “신 없는 시대의 종교 소설”이자 “믿음에 관한 소설”이다. 그러나 도선이 쓴 시나리오, 〈매일 마테라로 가는 남자〉의 마지막 장은 단순히 ‘믿음’의 두려움을 설파하거나 정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이 받아들여지길 염원하던 ‘둡둡’, 헤어진 딸을 만나기 위해 글을 써야만 했던 ‘도선’, 살기 위해 반드시 붙잡아야만 하는 믿음도 있음을 깨닫는 ‘양우’, 아들에게 들려주려던 마지막 문장을 묵묵히 품고 살아가는 ‘강규산’은 “기적이나 신을 믿어서가 아니라 사랑의 말을 건네고 듣기 위해” 기도했던 사람들이다. 《탱크》는 이 가련한 기도자들이 결국 “맹목과 광신의 사이비 종교라는 외피를 뚫고” 나오는 모습을 원숙하게 묘사하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의 어려움을 온전히 겪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신중한 낙관”의 명제를 거침없이 밀고 나간다.
그렇게《탱크》는 “내가 바라는 것을 알기가, 그것을 이루기가 무척 어려운” 이 시대의 독자를 기꺼이 “사랑 앞에 이르게 한다”. 그 어떤 관계보다 사려 깊게 표현된 둡둡과 양우의 사랑은 “사랑에 대한 믿음만이 삶을 지속시키고, 사랑만이 견고한 세계를 조금 달라지게 만들 것이”라는 감각을 새롭게 선사한다. 재해, 퀴어, 사이비 종교, 청년 세태 등 당면한 오늘의 주제와 날 선 문제의식으로 ‘가장 희망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기지는, 《탱크》이후 선보일 작가 김희재의 소설 세계를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사랑 역시 끝내 닿지 못할 세계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겨나고, 이유도 모르면서 지속되고, 사랑이 끝난 후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믿음만이 삶을 지속시키고, 사랑만이 견고한 세계를 조금 달라지게 만들 것이다. 사랑에 헌신하는 이런 이야기에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다. _편혜영 소설가, 추천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