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샤
쇼샤는 참 독특한 소설이다. 어떠한 자극적인 소재도, 깜짝 놀랄 만한 반전도 없는데 이상하게 한번 이야기에 발을 들여놓으면 좀처럼 책에서 손을 떼기 힘들다.
별것 없는 일상이 반복됨에도 페이지를 넘길 수밖에 없는 까닭은 다양한 등장인물들에게서 풍기는 개성 때문일 것이다. 아이작 B. 싱어는 전혀 다른 인물들을 창조해냈음에도 인물 한 명, 한 명이 가진 입체성과 깊이를 아주 훌륭히 표현했다. 나치가 곧 쳐들어와 학살을 자행할 것이 분명한 바르샤바에서 이 다양한 인물들이 마주한 것은 죽음인 동시에 삶이다. 즉 죽음이 목전에 있기에 삶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알고 보면 인간의 삶을, 혹은 자신의 삶을 이해해보려는 간절한 독백이다. 그런데 문학이, 문학하는 인간이 하는 일이란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우크라이나에서 인간의 생명이 파리 목숨 취급당하고, 우리의 지정학적 위기 역시 그 못지않게 고조되는 가운데, 죽음 앞에 선 삶의 민낯은 어떠한지 이 소설을 통해 바라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일 듯하다.
아래는 중심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다. 책 속 등장인물은 저마다 다른 태도로 이 파국을 맞이하고, 헤쳐 나가고, 때론 굴복하며, 몸소 겪어낸다. 각 인물은 다양한 삶을 대변한다.
끝없는 갈망은 곧 스스로의 숨통을 옥죄는 것, 하지만 그게 삶이 아니라면 뭘까
베티 슬로님
“죽음은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안타까워요. 그것은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값비싼 포도주와 같아요. 자살하는 사람은 한 번에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고자 해요. 하지만 그렇게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죽음의 맛을 즐기는 법을 배우죠.”
아름다운 여성이자 출중한 능력이 있는 배우지만 끝없는 자기멸시와 회한, 그리고 갈망으로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인물, 베티 슬로님. 누구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며 돈과 아름다움 등 모든 것을 갖춘 데다 미국 시민권자라 히틀러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그녀지만 어쩐 일인지 이 모든 인물들 중 죽음에 가장 가까운 것만 같다.
하늘을 배반한 배덕자, 또는 하늘과 마주한 메시아
모리스 파이텔존
“어쩌면 혼돈이야말로 목적인지도 몰라. 자네는 카발라를 봤을 테고, 아인 소프가 세상을 창조한 후 처음으로 불을 밝히고 공허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대창조가 시작된 것은 이 공허 속에서였어. 이 신성한 무가 창조의 본질 자체야.”
“나는 하느님을, 목적도 모른 채 만든 자신의 은하계와 무수한 법칙 때문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심하게 병든 존재로 생각하지.”
모리스 파이텔존은 석학, 가난뱅이, 합리주의자이면서도 종교에 대한 관심을 잃지 못하는 인물이다. 다양한 여성과 연애를 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와 인간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해 마르지 않는 호기심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 자신 역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권태롭기 때문에 쾌락을 탐하는가, 탐하기에 권태로운가
(셀리아 첸트시너)
“어떤 사람들이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건 그들에게 손을 뻗을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죠.”
단정하고 보수적인 옷차림에 조심스러운 몸짓을 보이는 기혼여성이지만, 그녀의 안에는 문학과 연극, 음악 심지어 신문 기사에서조차 성적 쾌락을 느끼는 관능성이 숨어 있다. 고아 태생이라는 가혹한 운명으로 미숙한 남자 하이믈을 남편으로 맞아야 했다. 풍부한 재능을 가졌지만 결국 운명 앞에 체념해버리는 그녀의 모습은 약하디약한 우리 인간의 보편성을 나타내는 것만 같아 가슴 찡하다.
살아 있으니 삶이 있다
(하이믈 첸트시너)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모리스. 그리고 자네도, 추칙. 자비로운 진리라는 게 없다면 나는 따스함과 기쁨의 순간을 주는 거짓을 받아들이겠어요.”
“소유의 시간은 곧 지나가고 새로운 본능을 가진 인간이 출현할 거야, 나눔을 실천하는.”
셀리아의 남편으로 어마어마한 부자이지만, 아이처럼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으며 서투르다. 하지만 이 왜소하고 무능한 남자에게 비범한 능력이 있는데, 그건 바로 삶을 감각하는 태도다. 그는 도덕과 관습, 의식 따위를 고찰할 능력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지만 어떤 삶이 ‘인간으로 사는 삶’인지 감각할 수 있는 능력만은 탁월하다.
삶에 어떤 기대도 없는 0의 인간. 텅 비었기에 더욱 투명하게 꿰뚫어 볼 수 있다
(주인공, 아론 그라이딩거, 아렐레)
혼탁한 세상에서의 순수, 그것은 곧 창조
(쇼샤 슐디네르, 쇼셸레)
도서관에 갈 때마다 나는 어쩌면 그 책들 속에 나와 같은 기질과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해주는 계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 나는 세상이 항상 지금과 같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덕주의자들이 악으로 일컫는 것은 사실 삶의 질서였다.
“오, 아렐레, 너와 함께 있는 건 좋아. 나치가 쳐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돼?”
“죽어야지.”
“함께?”
“그래, 쇼셸레.”
“메시아는 오지 않아?”
“그렇게 빨리 오지는 않을 거야.” …… 그녀는 내 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오, 아렐레. 우리가 죽게 된다 하더라도 네 옆에 눕는 건 좋아.”
주인공 아론은 소설가이고 쇼샤는 그의 어릴 적 소꿉친구로 몸과 마음의 성장이 멈춘 백치이다. 아론은 온갖 여성과의 만남을 이어오던 중 우연히 쇼샤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순간 아론은 자신이 지금껏 찾아왔던 것이 쇼샤였음을 깨닫게 된다. 명석한 젊은이와 어리숙한 소녀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둘의 조합은 불안정하다. 하지만 둘의 만남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단 한 사람, 모리스 파이텔존은 예외로) 창조력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