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거대한 감각의 세계 - 초음파부터 적외선, 자기장 감지까지 진화가 선물한 초월적인 동물의 감각
“자기장을 볼 수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벌은 꽃의 전기장을 보고 꿀이 남아 있는지 알아내고
박쥐는 칠흑 같은 어둠에서도 초음파로 움직임을 포착하며
바다거북은 자신이 태어난 해변의 자기장을 기억하고 돌아온다
우리가 오감으로 지각하는 세계는
동물이 지각하는 세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영국 최고의 생태학자가 전하는
진화가 선사한 놀라운 감각의 발견
만약 인간의 귀가 조금만 더 발달해 초음파를 들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진즉에 귀청이 떨어져 나갔을지도 모른다. 박쥐가 달빛도 없는 밤에도 먹이를 찾을 수 있는 건 반향위치측정 능력 덕분인데, 이때 박쥐가 내는 초음파의 강도가 140dB이 넘는다. 1m 정도 떨어져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게 80dB 정도인 걸 감안하면, 박쥐가 먹이를 찾으려 얼마나 큰 소리를 내면서 날아다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박쥐만 이렇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생쥐 같은 여러 설치류나 돌고래 등도 초음파를 써서 소통하고 대화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지구상 최고의 생명체라 여기지만, 사실 인간이 지닌 감각은 동물의 감각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감각이 지닌 동물들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를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감각 및 진화생태학 교수인 마틴 스티븐스는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동물의 감각 세계를 대중에게 친절하게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다. 그는 이 책 《은밀하고 거대한 감각의 세계》에서 동물들이 지닌 놀라운 감각과 그 역할, 작동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에서 하나의 장은 하나의 감각을 다룬다. 청각과 시각, 촉각, 후각 그리고 우리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전기감각과 자기감각으로 채워져 있다. 초음파로 대화하는 생쥐, 4m 떨어진 나무 위에서도 서로의 진동을 알아채는 거미, 은하수 빛으로 길을 찾는 쇠똥구리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말미에서는 인류가 유발한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가 이들 감각에 얼마나 큰 피해와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누구든 당장이라도 미쳐버릴 수 있는 열악한 환경을 수많은 자연 동물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전하고 있다는 걸 저자는 분명하게 지적한다.
동물의 감각 세계에 대한 이해는 최신 과학기술의 선물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동물이 어떤 감각을 지니고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지각하는지 알 방법이 전무했다. 동물이 적외선과 자기장을 감지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감각이란 그야말로 그 감각을 지닌 동물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의 생태학과 동물행동학, 신경과학 등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어서야 감각의 신비에 조금씩 접근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의 감각을 이해할수록 그 많은 지식도 함께 배워나갈 수 있다. 《은밀하고 거대한 감각의 세계》는 제목처럼, 이제 그 모습을 드러낸 동물 감각의 은밀한 세계로 호기심 가득한 독자들을 초대한다.
초월적인 동물 감각이 밝히는
진화의 경이로움
동물의 감각은 왜 그렇게 다양하고 정교해진 걸까? 저자는 동물 감각 세계의 문을 연 과학자들을 놀래게 한 건 무엇보다 진화의 경이로운 업적이라 말한다. 동물의 다양한 감각은 각각의 동물이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하면서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다듬어진 결과물이다. 진화는 그 동물에게 가장 필요한 감각만을 예리하게 다듬고, 나머지 다른 감각은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축소했다. 결국 이러한 감각의 다양성은 감각 기능이 고정된 것이 아니며 주변 세계에 반응해 발달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저자는 감각이 진화하게 된 다양한 사연을 들려준다. 벌의 전기장 감지 능력은 결국 꿀을 더 잘 찾아내기 위해 발달했다. 벌이 비행을 하면 몸에 양전하가 축적되는데 반대로 꽃은 음전하를 띄기 때문에 최근에 벌이 앉았던 꽃의 전기장은 바뀌게 된다. 벌은 꽃의 전기장을 감지함으로써 방문객이 왔었는지 멀리서도 알아차릴 수 있어, 효율적으로 꿀이 남아있는 꽃을 찾아낸다.
개미는 후각이 매우 발달해 페로몬으로 우열을 점하고 번식을 억제하는 등의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데, 이는 모두 개미 군집의 질서를 잡는 수단이 된다. 예컨대 브라질 개미 ‘디노포네라 콰드리켑스’의 우두머리 암컷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개미의 몸에 침을 뱉어 페로몬을 묻히는데 페로몬이 묻은 개미는 다른 개미들에게 며칠씩 괴롭힘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개미의 예민한 후각을 바탕으로 페로몬을 일종의 선전도구로 사용해 집단의 서열을 유지하는 것이다.
바다거북은 놀랍게도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데, 이는 이들의 생존이 걸린 방향 감각과 관련이 있다. 해변의 알에서 깨어난 새끼 거북의 최우선 목표는 하늘을 나는 수많은 포식자를 피해 바다로 뛰어드는 것인데 이때 새끼거북은 자기장을 감지해 방향을 잡고 죽기 살기로 달음질한다. 겨우 바다에 도착하면 이제는 파도의 움직임을 거스르며 망망대해로 헤엄쳐야 하는데 이때도 자기정보를 활용해야만 따뜻한 북대서양 환류로 향할 수 있다. 수많은 동물의 초월적인 감각은 모두 이들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는
동물의 감각을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가
형광등은 인간의 문명을 밝힌 위대한 발명품이다. 우리는 형광등을 켜면 계속 밝다고 느끼지만 사실 형광등은 점멸한다. 단지 인간의 시각 체계로 감지할 수 있는 것보다 빠르게 점멸하기 때문에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만약 깜빡이는 불빛 아래서 살게 된다면 어떨까. 실제로 빛의 깜빡임은 불쾌감과 두통, 심지어 간질 발작과도 연관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깜빡임에 수많은 동물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새가 형광등의 깜빡임을 인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험에 따르면 유럽찌르레기는 진동수가 다른 조명을 구분했고, 오래된 TV나 모니터에서 나오는 낮은 진동수의 조명에 노출된 새들은 근육 경련을 일으키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올라갔다. 이 실험들은 곧 집안의 반려동물들이 이러한 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고통을 겪을 수 있음을 보여줬으며, 야외 조명을 고려하면 자연에 사는 동물들도 여기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외에도 저자는 환경 파괴가 동물 감각을 망가뜨리는 수많은 사례를 쏟아낸다. 농업용 살충제가 가재의 감각 수용체를 교란하고, 해양 플라스틱 조각이 내뿜는 디메틸황화물이 바닷새의 먹이 신호를 교란해 플라스틱을 집어삼키게 하며, 선박 소음과 빛 공해, 전자기 소음이 다양한 동물군의 소통을 방해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고 있음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문제를 이제 겨우 인식하는 단계라는 점이다.
다행히 동물의 감각을 활용한 해결책도 등장하고 있다. 잡고자 하는 종 이외에 상어나 돌고래, 거북 같은 멸종 위기에 처한 종도 그물에 걸리는 혼획이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참고로 2000년 한 해 동안 무려 25만 마리의 거북이 그물에 걸렸고, 행여 살아있어 바다에 돌려보낸다고 해도 결국 죽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거북의 감각을 활용하는 방안이 효과를 보이고 있다. 거북이 자외선을 감지하는 것에 착안해 그물에 자외선 발광 LED 조명을 달았더니 어망에 걸리는 거북의 수가 60% 감소한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동물의 감각을 밝히는 것은 그 자체로 생명과 진화의 신비에 다가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문명이 동물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는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이다. 모든 생명이 공존하지 못하는 지구 환경은 결국 모든 생명의 생존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렇게 끝맺는다. “우리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감각은 보잘것없지만, 우리는 진화를 통해서 그 어떤 동물도 없는 깊이 있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그 의식을 지구상 모든 생명의 행복을 위해서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