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책, 모비 딕
『모비 딕』에 바치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헌사
“회의와 희망을 뒤섞는 데서 오는 구원,
짧고 터무니없고 부조리한 삶 앞의 온화한 극기심,
이것이 내가 『모비 딕』을 읽는 이유다.”
_너새니얼 필브릭
“이 책은 젠체하지 않고 친구에게 소개하듯이 도저히 붙잡을 수 없는 고래 같은 책을 우리가 잠시나마 잡아볼 수 있도록 닻 역할을 해준다. (…) 『모비 딕』은 그렇게 사랑할 가치가 있는 책이고, 우리는 이 책에 바치는 저자의 열렬한 연서를 통해 그 가치를 다시 되새긴다.”
_홍한별, 「옮긴이의 말」에서
※ 『사악한 책, 모비딕』(저녁의책, 2017) 재출간
『모비 딕』은 어떤 책인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 소설이다. “거실에 록웰 켄트의 판화 〈에이해브 선장〉을 액자에 넣어 걸어놓기도 했던” 윌리엄 포크너는 “『모비 딕』이 다른 작가의 책 가운데 자기가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단 하나의 작품”이라고 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신의 출판업자에게 “말년이 다가오자 넘어서고 싶은 작가들이 이제 몇 안 남았는데 그중 한 명이 허먼 멜빌”이라는 말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스티브 잡스, 밥 딜런 등이 애독한 책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미국의 성서’라고도 불리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그러나 멜빌이 일흔두 살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모비 딕』은 미국에서 고작 3715부가 팔렸다. “1851년 가을 『모비 딕』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거의 아무도, 아마도 이 소설을 헌정받은 작가 너새니얼 호손과 호손의 아내 소피아 정도를 빼고는 아무도 『모비 딕』에 주목하지 않았다.” 『모비 딕』이 찬양의 대상이 된 것은 1차대전이 끝나고 난 뒤였다. 도대체 『모비 딕』은 어떤 책인가?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의 대답은 단호하다. “미국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양 문학의 본질이 담겨 있는 책이다.” 그가 덧붙인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으려 애쓰는 개인으로서, 헌법에 명시된 이상에 도달하려 애쓰는 국가의 시민으로서, 우리에게는 이전 어느 때보다도 『모비 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모비 딕』은 진정한 서사시다.
창조 신화, 복수 설화, 민간전설, 창조하고 또 파괴하고자 하는 상충하는 충동을 엮어
이 모든 것을 지구의 광대한 대양을 배경으로 펼치며, 미국의 강력한 원형을 거의 전부 구현했다.
_79쪽
최상의 『모비 딕』 입문서이자 빼어난 고전 독서 에세이
미국을 넘어 세계의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우리에게 『모비 딕』은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너무 길고 곁가지가 돌아버리게 많아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나 『위대한 개츠비』 등 미국의 고전으로 간주되는 많지 않은 소설들 가운데서 가장 덜 읽히는 책”이 바로 『모비 딕』이다. 그러나 그는 『모비 딕』에 대해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풍부한 뉘앙스가 담긴 어조로 쓰였다. 속을 털어놓듯, 농담을 하듯, 그러다가 또 웅변조로, 터져 나오는 달변으로 쏟아져 성층권까지 치솟으면서도,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어찌나 백과사전적이고 세밀한지 외계인이 이 책을 토대로 19세기 중반 지구에 존재했던 포경업을 재구성해낼 수 있을 정도”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멜빌이 『모비 딕』을 탈고한 후 너새니얼 호손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목을 딴 이 책 『사악한 책, 모비 딕』(원제 Why Read Moby-Dick?)은 『모비 딕』을 읽기 전후에, 혹은 『모비 딕』과 더불어 놓고 읽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돌아버릴’ 정도로 많은 ‘곁가지’에 담긴 의미를 하나하나 드러내고 밝히는 동시에, 독자가 자연스럽게 『모비 딕』이라는 위대한 소설에 도전할 수 있도록 고무하고 격려하는 최상의 입문서이자 그 자체로 빼어난 문학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모비 딕』은 긴 책이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한 문장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고, 읽으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뭔가 긴박하고 긴요한 할 말이 있어 불쑥불쑥 등장하는 유령들처럼, 책을 쓰는 동안 멜빌의 몸을 타고 흘렀던 다양한 목소리에 이입해 글을 느끼는 것이다. _19쪽
『모비 딕』과 너새니얼 호손
『사악한 책, 모비 딕』은 불과 160여 쪽밖에 되지 않는 가벼운 분량이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가볍지 않다. 매끄러운 줄거리 요약이나 친절한 작품 해설을 기대하고 집어 든다면 오히려 실망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모비 딕』뿐만 아니라 멜빌이라는 작가의 드라마틱한 생애와 그가 미래 미국 문학의 걸작을 써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그려 보이며 독자의 흥미를 한껏 돋운다. 특히 열다섯 살 연상으로 멜빌이 인간적·문학적으로 의지했던 호손과의 관계, 멜빌이 『모비 딕』을 쓰는 동안 호손이 그에게 끼친 영향 등에 대한 일화는 『모비 딕』에 대한 이야기만큼이나 인상 깊다. 멜빌의 인물 창조와 창작 방법에 호손이 끼친 영향을 서술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그 예다.
에이해브를 창조해내는 과정에서 또하나의 돌파구가 있었는데 이것도 호손에게서 나왔다. 멜빌은 호손에게 자기가 가장 동일시하는 대상과 미학적 거리를 둠으로써 인간 경험의 가장 암울하고 가장 무시무시한 면에 대해 쓸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그래서 멜빌은 호손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저는 사악한 책을 썼지만, 새끼 양처럼 무구한 기분입니다.”
하지만 멜빌은 결국에는 호손처럼 어둠으로부터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소피아 호손이 느꼈듯이 멜빌은 삶에 몰두해 있었고, 자기 인물에도 몰두해 있었다. _62쪽
멜빌의 삶과 문학에서 호손은 의미심장한 자리를 차지한다. 호손과의 관계를 빼놓고는 멜빌의 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멜빌이 호손에게 쓴 편지들이다. 이 책에서는 호손에게 보낸 멜빌의 편지를 적절하게 소개하며 독자의 『모비 딕』 이해를 돕는다. 이를테면 이런 편지가 『모비 딕』이라는 소설에 한 인간의 숨결을 고스란히 불어넣는 것이다.
“내가 가장 쓰고 싶은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 돈이 안 된다고요.” 멜빌이 호손에게 한탄했다. “그렇지만 다른 방식으로는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최종 결과물은 잡탕이고, 내 책들은 전부 망작입니다. (…) 본질적으로 생명이 이렇게 짧은 현대의 책을 정교히 다듬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_74쪽
세속의 모든 것에 대한 회의와 천상의 것에 대한 직관
저자는 기본적으로 『모비 딕』의 서사를 차분히 따라가면서도, 마치 멜빌이 그랬던 것처럼 끊임없이 책 안팎을 넘나들며 멜빌과 『모비 딕』의 베일을 한 꺼풀씩 벗겨나간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은둔에 가까웠던 멜빌의 불우한 말년 풍경 또한 소슬하게 그려진다. 야심만만한 패기와 불굴의 의지로 완성해낸 『모비 딕』은 멜빌에게 그 어떤 명성도 가져다주지 못한 채 묻혀버렸고 “에이해브처럼 불타는 영광과 함께 사라지는 대신, 멜빌은 폴러드 선장처럼 조용하고 소박하게 살아갔다”. 늘그막에 유산을 물려받은 멜빌은 일을 그만두고 책으로 둘러싸인 뉴욕의 한 어두컴컴한 방에 틀어박혔다. 평생의 습관이었던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또하나의 걸작 『빌리 버드』를 남기고 그는 1891년 세상을 떠난다.
멜빌이 죽고 나서 식구들은 『모비 딕』을 쓰고 난 뒤 40년 동안의 여파를 멜빌이 어떻게 감당해왔는지, 그리고 애초에 어떻게 해서 그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줄 만한 단서를 찾아냈다.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인 탁자 위에 휴대용 집필대가 있었다. 집필대 안쪽에 “젊은 날의 꿈을 저버리지 마라”라는 모토가 인쇄된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독일 시인이자 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 말이 멜빌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_148-149쪽
해석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 저자는 “회의와 희망을 뒤섞는 데서 오는 구원, 짧고 터무니없고 부조리한 삶 앞의 온화한 극기심”이야말로 자신이 『모비 딕』을 읽는 진정한 이유라고 말하며 책을 맺는다. 여기서 독자는 다시 『모비 딕』으로 돌아가야 한다. 화자인 이슈메일은 말한다. “맑은 하늘에는 무지개가 생기지 않는다. 무지개는 수증기에서만 빛난다. 그러니 내 머릿속 흐릿한 회의의 짙은 운무 속에서도 신적인 영감이 이따금 번뜩여 안개를 천상의 빛으로 밝힌다. (…) 세속의 모든 것에 대한 회의와 천상의 것에 대한 직관, 이 조합으로 신자가 되지도 불신자가 되지도 않고, 양자를 똑같은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