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나를 자살의 목전에서 붙잡은 것은
도로 중앙분리대에 있던 은은한 초록빛을 띤 묘목이었다”
햇살과 새싹이 생명력을 뽐내는 3월의 어느 봄날, 에마 미첼은 압도적인 자기혐오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비합리적이지만 도무지 제어할 수 없는 온갖 상념과 비난이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그것은 우울증이 지닌 무기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무기다. 그는 통렬한 자기 비난에 빠져 과거의 실패와 상처받은 기억을 끊임없이 곱씹는다. 오래된 기억이 잘 벼른 칼날처럼 마음을 난도질한다. 급기야 그는 우울증에 등을 떠밀려 자기 소멸의 욕구로 비틀비틀 나아간다. 그날 미첼이 경험한 것은 병증이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완강해지는 경계선, ‘우울증의 블랙홀’이다. 그는 강렬한 공포와 참을 수 없는 무기력을 느끼며 차를 몰고 도로로 나간다. 어디에 가면 가장 효율적으로 죽을 수 있을지에 관한 끔찍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남은 것은 절망과 죽음밖에 없다고 느껴지던 순간, 미첼은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새로이 자라나는 조그만 묘목을 발견한다. 눈앞을 스치는 연한 초록빛의 잎사귀가 그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초봄의 햇살과 신록이 죽음을 향해 치닫는 감정의 폭풍을 진정시킨다. 그와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마음의 온전한 부분, 자연에서 치유를 구하는 뇌의 일부분이 깨어난다. “나무들……, 푸르름, 위로.” 묘목을 따라 한동안 더 달린 끝에 미첼은 파국을 향하던 폭주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의사를 찾아가 회복 계획을 세우고, 충분히 쉬고, 항우울제 복용량을 늘린다. 그렇게 미첼은 자살의 문턱에서 돌아서 자신을 덮친 우울증 에서 빠져나오는 회복의 여정을 시작한다. 언제나 최악의 우울증 증세를 피하게 해주었던 자연의 위안이 다시 한번 미첼의 삶을 구한 것이다.(133~135쪽)
반평생에 걸친 우울증 회고록이자 일 년간의 자연 관찰 일기
“우울한 날에도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위로가 된다”
에마 미첼은 25년간 우울증을 앓았다. 《야생의 위로(원제: The Wild Remedy, 심심刊)》는 그가 반평생에 걸쳐 겪어온 우울증에 관한 회고록인 동시에 몇 번의 심각한 우울 증상을 겪는 동안 만난 자연의 위안에 관한 일 년간의 일기다. 가을에서 시작해 겨울을 견뎌내고, 새싹이 움트는 봄과 뜨거운 여름을 지나 다시 가을로 돌아오는 여정은 자연과 계절의 변화뿐 아니라 그가 겪는 감정의 변화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미첼은 반려견 애니와 함께 집 근처 숲을 산책하는 것으로 시작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는 해변, 오래된 화석이 있는 절벽, 작은 난초가 있는 언덕 등 다양한 공간을 찾아간다. 공간을 탐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산책 중에 발견한 자연물을 그리고 사진 찍고 채집하는 과정도 치유의 일부가 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자연 묘사와 심리 묘사 사이의 매끄러운 연결이다. 동식물과 광물, 지질학을 연구하는 박물학자이자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인 미첼은 그가 가진 재능과 지식을 이 책에 마음껏 펼쳐 보인다. 유려한 문장과 함께 책의 갈피마다 조화롭게 배치된 사진과 스케치, 수채화는 그가 보고 듣고 느낀 자연을 책을 통해 온전히 만끽할 수 있게 도와준다. 매 계절 숲을 산책하며 모은 “영혼을 치유해주는 자연의 힘(231쪽)”을 꾹꾹 눌러 담은 이 책은 문밖의 자연과 그것이 가진 치유 효과를 듬뿍 담은 한 권의 숲이 된다. 이를 문학 평론가 에마 프로이트는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문학적 항우울제’라고 표현했다.
냉이를 간단히 스케치하거나 상모솔새를 수채화로 그리는 것, 쉽게 찾을 수 있는 식물들로 채집 표본을 만드는 것은 산책 자체만큼이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연필로 새매의 모습을 그럭저럭 비슷하게 그려보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영감을 준 새와의 만남만큼이나 마음속의 복잡하고 어두운 생각을 쫓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 완벽한 결과물보다 대상을 바라보고 그리는 차분한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자연 관찰의 유익한 작용과 본 것을 기록하며 보내는 시간은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 숲이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곳에 서식하는 초목과 야생동물의 미세한 디테일에 주목할 때면 우울증이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이는 내게 자가 치유의 방식이 되었다.(24쪽)
다음 계절을 위한 마음의 힘을 쌓는 강력한 방법
자연은 의료적 심리치료를 보충하는 효과적인 건강 모델이 될 수 있다
자연에서 발견한 위안으로 고통받는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비단 미첼 혼자만의 경험은 아니다. 자연을 산책하고 나비나 새를 관찰한 후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정적인 마음이 누그러진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봄이 오면 벚꽃을, 여름이면 바다를, 가을이면 단풍을, 겨울이면 눈 쌓인 들판을 보기 위해 기꺼이 귀한 시간을 할애해 야외로 나간다. 하지만 자연이 촉발하는 긍정적 감정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걸까? 우리가 공원을 산책하거나 바닷가에서 맨들맨들하게 모서리가 닳은 조약돌을 들여다볼 때, 실제로 신체와 뇌에 측정 가능한 치유 효과가 생기는 것일까?
많은 연구자들이 자연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연구했다. 그중 임상 병리학자 마가릿 한센Margaret Hansen은 ‘산림욕과 자연치유Shinrin-Yoku(Forest Bathing) and Nature Therapy’라는 논문에서 자연과 인간의 정신 건강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10년간의 연구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분석했다. 한센은 이를 통해 자연이 가진 임상 치료 효과를 확인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전문가들에게 산림욕을 보편적 건강 증진 모델로 사용하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자연을 활용한 임상 건강법의 한 가지 사례로 볼 수 있는 영국의 ‘네이처스 웨이Nature`s Way’는 세계 최대의 온실인 에덴 프로젝트Eden project와 연계된 사회적 처방 프로그램이다. 사회적 처방은 의약품 처방과는 다른 개념으로 의료전문가들이 환자에게 필요한 다양한 비임상적 서비스를 제안하는 것이다. 영국 보건복지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 네이처스 웨이는 사람들에게 자연 산책 서비스를 처방함으로써 건강과 생활을 향상시킬 기회를 제공한다. 환자들은 그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을 위해 의료진에게 ‘주간 정원 가꾸기’ 같은 활동을 처방받는다. 2016년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이미 수백 명의 삶을 바꾸어 놓았으며, 입원 시간의 유의미한 단축으로 영국 국민건강보험의 부담을 현저히 덜어주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사실은 이런 야외 활동이 환자들의 창의력을 북돋우고,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도록 도와 전반적인 생활과 우울 증상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네이처스 웨이는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함으로써 자연이 가진 치유 효과를 누리도록 했고, ‘삶과 정신 건강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는 참가자의 평을 받으며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 분비 촉진…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라앉히고 면역력을 높이는 자연의 힘
“정원을 산책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자연의 약상자에 손을 집어넣는 것과 같다”
네이처스 웨이에 참여한 사람들이 경험한 마음의 변화는 자연의 치유 효과가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자연 앞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건 그저 근사한 풍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생물학적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첼은 이러한 신체 반응의 근거를 밝히기 위해 자연이 인간의 심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생화학과 신경과학 연구를 인용하며 숲이나 바닷가, 혹은 공원을 산책할 때 느껴지는 자신의 감정 변화를 뇌 내의 화학작용과 호르몬의 변동에 대입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산책과 야생동식물 관찰이 시시때때로 덮쳐오는 우울과의 일상적 전투에 강력한 우군이 되어줄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책에 인용된 자연이 인간의 심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1.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로가 감소하고, 면역력과 회복력이 증가한다
에마 미첼은 매일 집 근처 숲을 산책하고 야생동식물을 관찰하며 일상의 근심이 사그라들고 우울증의 장막이 걷혀 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는 이런 기분 변화의 근거를 자연을 바라보고 숲을 거니는 행위에서 찾는다.
마드리드 대학의 공간 실험과학자 마리아 벨라르데Maria Velarde가 노르웨이 생명과학부와 함께한 연구 ‘자연경관을 보는 것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Health effects of viewing landscapes’에 따르면, 자연경관을 마주하면 스트레스나 정신적 피로의 해소되고 질병에서 회복되는 속도도 빨라진다. 사람들의 전반적인 건강 수준에 대한 장기적인 개선도 확인되었다. <바이오사이언스Bio Science>에 실린 ‘자연이 존재하는 주변 환경: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주는 이점Dose of neighborhood nature: The Benefits for Mental Health of Living with Nature’은 식물의 존재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전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은 거주자의 우울증과 불안, 스트레스 인지도를 떨어뜨렸으며,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기분 저하를 완화한다는 점도 같은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18쪽)
또한 산책을 하는 동안 들이마시게 되는 ‘피톤치드’는 인간의 면역계와 내분비계, 순환계와 신경계에 작용하여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감염을 막아준다. 우리는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무의식중에 식물이 생성한 피톤치드를 들이마시며 그야말로 몸을 ‘소독’하는 것이다. 미첼은 풀숲에 앉아 식물에 둘러싸여 있을 때 강렬한 만족감을 느끼곤 한다. 그 위안은 곧 그의 마음을 치유하고 다가오는 내일을 지탱할 양분이 된다.
“단생벌이 블루벨의 꿀과 꽃가루를 채취하느라 윙윙 날아다니는 소리가 나른하게 들려온다. 꽃들 사이에 드러누워서 한잠 자고 싶어진다. 편안히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것이 산림욕이구나. 나는 주위의 풍경에 완전히 스며든다. 낙엽의 곰팡이 냄새와 블루벨의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햇살이 목덜미를 데워준다. 수풀 속의 소형 포유동물들이 분주하게 바스락대는 소리와 머리 위의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숲은 내 혈압을 낮추고 기분을 돋우며 스트레스 수치를 끌어내려 준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회복에 유익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167~168쪽)
2. 자연적 항우울제,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세로토닌은 중앙 신경계 전체에 광범위하게 투사되어 생물학적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으로, 세로토닌이 관여하는 중요한 영역 중에는 기분과 감정에 관련된 회로가 포함된다. 세로토닌의 작용과 우울증 사이의 관계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체내 세로토닌 수치 변화가 우울증뿐만 아니라 공격성, 충동, 강박증과 자살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해 분명해졌다.
자연을 산책하는 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한다. 인간의 피부는 세로토닌을 생성하는 고유한 세로토닌 체계를 갖고 있어서 햇빛이 망막이나 피부에 닿으면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하고 그에 따른 기분 상승효과가 나타난다. 심리 치료 전문가들이 무기력과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밖으로 나가 햇볕을 쬐고, 산책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 이러한 햇빛의 효과 때문이다. 또한 영국의 과학자들은 토양에서 발견되는 박테리아가 신체 내에서 항우울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이 미코박테륨백케이 같은 양성 토양 박테리아에 접촉하면 박테리아의 세포벽에서 나온 단백질이 특정 뇌세포 군집에서 세로토닌 분비를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잡초를 뽑고 식물을 돌보는 시간이 화단의 꽃과 나무에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19~20쪽)
“회복 속도는 느리지만, 야생이든 인공적으로 가꾼 것이든 식물 사이에서 지낸 시간의 치유 효과는 뚜렷하다. 맑은 날 아침이면 나는 화단의 잡초를 뽑으며 유익한 토양 박테리아, 특히 미코박테륨백케이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균주들과의 접촉이 뇌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춰주기를 기대한다. 정원 일은 흙을 만지며 하는 요가와도 같아서 만족스럽고 은근히 기분을 달래줄 뿐만 아니라 우울한 생각을 쫓아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정원에 찾아드는 새들을 관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154~155쪽)
3. “채집 황홀”, 도파민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한다
산책을 통해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뇌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어 일시적인 흥분을 느끼게 한다. 소위 “채집 황홀”이라는 것이다. 뇌의 보상 중심부에서 방출되는 도파민은 성취감과 기쁨을 준다. 이런 호르몬의 변화는 인간이 채집 수렵 생활을 해왔던 20만 년 전의 도파민 보상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열매가 가득 달린 나무나 산딸기 관목은 조상들의 칼로리 섭취를 늘려주었을 것이며, 따라서 식용이 가능한 식물에 긍정적인 반사작용을 나타내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요소였다. 그리하여 식물을 채집하면 뇌 내의 보상작용이 촉진되었고 이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다. 자연과의 접촉으로 발생하는 이와 같은 생물학적 과정은 뇌 내의 화학적 균형을 조정하고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보상에 대한 행동을 강화하고, 또다시 숲으로 나가 산책이 주는 이점을 취할 수 있게 한다. 산책을 하는 동안 분비된 도파민이 다른 유익한 활동을 촉진하니, 숲속을 걸음으로써 우울증에 빠진 뇌를 구하는 선순환이 시작되는 셈이다.(35~37쪽)
“새로운 전율로부터 마음이 진정되자 나는 애기풀이 백리향과 요정아마에 뒤섞여 사방 몇 미터에 무더기로 자라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키는 7센티미터 정도이며 참제비고깔처럼 푸르고 카리브해 상공처럼 맑은 외꽃잎 안에 흰 공작새 꼬리털처럼 가느다란 술 모양의 내꽃잎이 있다. (…) 이 지역의 식생은 대부분 작은 식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거대한 기쁨을 안겨준다. 뇌에 도파민이 흘러넘치는 것 같지만, 아직도 더 많은 황홀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나는 탐험을 계속한다.”(187쪽)
숲을 거닐며 직접 경험한 자연의 임상적 치유 효과
산책, 뜨개질, 스케치와 자연물 수집, 새 모이 보관소까지…
미첼은 우울증을 극복하려 애쓰는 대신 어르고 달래며 함께 살아간다. 그는 심각한 우울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그와 함께 전문의와 연구자들이 추천하는 다양한 우울 증상 완화법을 시도한다. 매일 숲을 산책하고, 딸을 위한 장갑을 뜨고, 관찰한 동식물을 그림으로 남기고, 정원으로 새를 불러들이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항우울제나 상담 치료 같은 기존의 의료적 처방에만 의지하거나, 자연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대신 치료와 자연을 상호보완적으로 이용하며 요동치는 마음의 균형을 잡는다. 미첼은 우울증을 제어하려면 “자연 속에서의 산책, 창의적으로 보내는 시간, 그리고 홀로 있을 때 곁을 지켜줄 호박색 털북숭이 친구라는 방어용 무기를 갖춘 일상적 전투”(116쪽)가 끊임없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물러간 것 같다가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끝나지 않는 우울과 투쟁하며 자신을 돌보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에마 미첼은 아득한 화석의 흔적을 보며 경이에 젖고,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봄을 맞으러 온 제비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자연이 선사한 순간들을 목격하는 시간이 삶의 의욕을 북돋우고, 그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힘이 되어주었다. 미첼을 따라 걸으며 그가 아낌없이 풀어놓는 기술과 지식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상적 자연에서 거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압도적인 자기혐오와 통렬한 상념이 덮쳐올 때조차 창밖의 나뭇잎에서 희망과 기쁨을 느끼는 법을, 자연을 통해 우울증에 빠진 마음을 구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건조된 해안 풀밭의 향긋한 냄새, 벼랑에 핀 아르메리아꽃의 은은한 분홍빛, 작은 물고기들의 움직임, 파도에 깎여 속이 빈 바위 구멍에 고인 바닷물, 말라붙어가는 해초의 톡 쏘는 내음, 손바닥에 에메랄드처럼 소중하게 쥐여 있던 조그만 초록빛 오각불가사리. 말로스 해변과 할아버지의 정원에서 자연과 처음 만나 느낀 강렬한 기쁨을 거듭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나를 계속 살게 해주었다.”(233쪽)
봄이 왔지만 선뜻 집 밖을 나서기가 어렵다. 미첼은 “당신이 무기력해져 소파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들큼한 슬픔의 진창에 빠진 기분일 때, 이 책으로 내가 관찰한 것들을 읽으며 사진과 그림을 보고, 나아가 직접 고둥이나 족제비를 찾아 나섬으로써 위안을 찾게 되는 것(25쪽)”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말한다. 자연에서 만난 기쁨을 섬세한 필치와 생생한 이미지로 온전히 전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손끝으로 야생의 위로와 움트는 새싹, 성큼 다가온 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곁에 두고도 품지 못했던 문밖의 봄을 힘껏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