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의 심리학 -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공간,
그리고 수많은 오해와 유머의 원천,
몸과 마음의 모든 ‘배설’을 들여다보다
배설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만약 누군가 배설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병이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다. 하지만 ‘아랫도리’에 관한 일이 대개 그렇듯 배설은 점잖은 사람이 노골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것, 기껏해야 추잡한 관심과 저속한 유머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배설이 저속하고 나쁘기만 한 것일까? 이 책은 우리 몸과 마음의 모든 배설, 그리고 배설 공간에 관해 심리학으로 두루 이야기한다. 과민한 대장과 신경질적인 방광에서부터, 방귀와 배설 관련 욕설, 화장실의 낙서를 심리학과 젠더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심지어 변기 깔개를 내려놓는 게 좋을지 올려놓는 게 좋을지까지 심리학적?통계학적으로 분석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배설의 심리학’이자 심리학자 폴 로진이 주목한 주제 ‘구멍 파보기hole hole’, 즉 ‘구멍의 심리학’을 다룬다.
굳게 닫힌 화장실 문을 다시 열자
기발한 관점으로 기존의 사회적 금기를 조명했던 정신분석학이 20세기 중반 쇠락하고 나서, 심리학계는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다.
“수많은 과학 학술지에서 식욕과 음식 섭취에 대해 조사하고 미각을 화학적 감각의 하나로서 분석하는 등 먹고 마시는 행위에 지면을 바치고 있다. 수천여 편에 이르는 논문이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의 증상, 원인, 치료법을 탐구하고, 수많은 학술지가 이러한 증상을 파악하고 치료하려는 연구 결과와 이론을 발표한다. 그러나 (중략) 거식증은 몹시 고통스러운 질병이긴 하지만 과민 대장 증후군이나 요실금 및 변실금, 공중화장실에 대한 극심한 공포로 고생하는 사람은 거식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보다 몇 배나 더 많다. 사람들이 배설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배설의 흔적을 숨기려고 애쓰듯, 심리학자들도 과학적 연구와 이론에서 배설을 무시하고 감추려 한다.”(24~25쪽)
다행히도 최근 들어 심리학자들은 그동안 무시되었던 일상 영역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수치심’과 ‘혐오감’이라는 감정이 학계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더불어 의학계에서는 몸과 마음의 연결, 곧 심신 상관성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아름답든 추하든, 자랑스럽든 수치스럽든, 깨끗하든 더럽든 간에 신체의 모든 측면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33쪽)
그래서 이 책은 우리 몸과 마음의 배설, 입으로 하는 배설, 그리고 배설 공간에 관해 최근까지 진척된 심리학 연구의 성과를 차근차근 정리해서 친절히 설명해준다.
“이들 연구 결과는 수백 가지 문헌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으며, 개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학술지에 실려 있어 전문가들만 접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많은 논문이 오랫동안 잘 읽히지도 않고 거론되지도 않은 채 묻혀간다. 하지만 이들 연구를 뒤져보면 종종 실험으로 입증된 매우 흥미로운 사실과 번득이는 이론적 고찰, 흔치 않은 역사적 경험과 흥미진진한 사례 연구를 발견할 수 있다.”(34쪽)
지은이의 수고 덕분에 우리는 그런 사실과 이론과 성과들을 이 책 한 권으로 추려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과민한 대장에서부터, 방광, 방귀, 욕설, 낙서와 변기 깔개 이야기까지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이뤄졌다. 1장은 서론으로서 책의 내용과 주제 의식을 설명한다. 2장은 과민한 대장과 대변, 3장은 신경질적인 방광과 소변, 4장은 눈치 없는 방귀 이야기다.
5장은 이른바 ‘항문기 성격’에 대한 이야기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장한 항문기 성격론은 1970년대 이후 퇴물 취급을 받고 있지만, 항문기 성격론이 규정한 성격 개념 자체는 오늘날까지도 다양하게 변주되며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6장은 말로 하는 배설, 곧 욕설에 관한 이야기다. 욕설을 ‘변기에 빠진 입potty mouth’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7장은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도 볼 수 있는 ‘화장실 낙서’를 탐구한다. 공중화장실은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익명으로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특이한 공간이다. 화장실 낙서의 내용과 형태는 상당히 많은 심리학, 민속학, 인류학 연구의 주제가 되었다. 공중화장실은 대개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사고방식과 선입견, 언어 습관, 의사소통 방식의 젠더 차이를 연구하기에 매우 적합한 실험실이 되기도 한다.
8장은 다른 장과 달리 현재 여러 가정에서 진행 중일지도 모르는 흥미로운 현안을 다룬다. 가정에서 여성과 같은 화장실을 쓰는 남성은 소변을 본 후 변기 깔개를 내려야 하는가? 이 문제 상황에 대한 합리적인 해법, 그리고 심리학적인 분석과 조언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