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에 핀 꽃 - 아시아 문학선 021
평화를 서원하는 우리 영혼의 꽃, 『총구에 핀 꽃』전쟁의 운명을 거부하고 평화의 길을 개척한 ‘작은 인간’의 이야기비핵화와 평화체제의 험로를 열어나가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52년 전 1967년 4월 초에 일본 언론들과 도쿄 특파원들이 주일쿠바대사관에 망명한 한국계 미군 탈주병을 일제히 보도했고, 도쿄 한국대사관과 서울 외무부가 주고받은 ‘김진수 한국계 미군 주일쿠바대사관 망명사건: 1967-68’이라는 비밀 문건을 생성했다. 『총구에 핀 꽃』은 김진수(미국명 그릭스)의 삶의 궤적을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손진호(미국명 윌리엄)이다. 이대환 작가는 후기에서 말한다. “‘손진호’는 ‘김진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손진호’다. 단지 ‘김진수’의 고독과 고통도 고스란히 짊어지고 나아간 작은 인간이 ‘손진호’라는 점은 틀리지 않는다.”왜 작가는 ‘손진호’라는 새로운 ‘문제적 개인’을 창조해야만 했는가. 『총구에 핀 꽃』에서 초점화자 역을 맡은 ‘나’(2018년에 73세인 손진호의 아들)의 발화(發話) 중에 답이 있다. “이 세상 그 누구의 이름으로도 능수능란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작가입니다. 그 수단이 허구라는 것이고, 허구란 바로 작가의 상상력을 담아내는, 작가가 자유자재 변형할 수 있는 그릇이고, 그 그릇이 최후로 담아내야 하는 실체는 어떤 사실들의 배후를 관장하는 진실과 그 진실의 핵을 이루는 인간의 문제입니다.” 망명에 실패하고 유폐의 인간으로 일 년을 견뎌낸 뒤 다시 지구를 반 바퀴 돌게 되는 험난한 길을 선택한 때에 손진호는 확고한 신념을 터득하고 있다. “국가나 거대폭력이 평화를 파괴할 수 있지만, 작은 인간의 영혼에 평화가 살고 있다면 평화는 패배하지 않는다.”한국전쟁의 고아로 미국에 입양돼 히피문화를 체화한 후 미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다 일본으로 휴가를 나와 주일쿠바대사관에 잠입하지만 망명의 길이 막혔던 손진호.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은 자신에게 덮씌워진 전쟁의 운명을 거부하고 평화를 찾아 헤매는 고투의 길이었다. 이 ‘작은 인간’의 이야기로써 피워낸 『총구에 핀 꽃』은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험로를 열어나가는 우리 시대의 문제작으로 우리 영혼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