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봄과 아수라

봄과 아수라

저자
미야자와 겐지 지음, 정수윤 옮김
출판사
읻다
출판일
2018-04-12
등록일
2018-11-30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62MB
공급사
알라딘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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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미야자와 겐지의 유일한 시집

은하계 전체를 ‘나’라고 느끼며
현실과 환상을 언어로 스케치하다


진실한 말은 설 자리를 잃고
구름은 가리가리 하늘을 난다
아아 빛나는 4월의 밑바닥을
이 갈고 성내며 이리저리 오가는
나는 하나의 아수라로다
_〈봄과 아수라〉 중 일부

무엇 하나 분명치 않은 형태와 풍경이 뒤섞여 만들어낸 마음의 기록

“이 시들은 스물두 달이라는/ 과거로 감지된 방향으로부터/ 종이와 광물질 잉크를 엮어/ (전부 나와 함께 명멸하고/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것)/ 지금까지 이어온/ 빛과 그림자 한 토막씩을/ 그대로 펼쳐놓은 심상 스케치입니다 _〈서〉 중 일부

〈은하철도 999〉의 원작으로 널리 알려진 《은하철도의 밤》을 쓴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동화작가이자 시인인 미야자와 겐지. 《봄과 아수라》는 그가 생전에 출판했던 유일한 시집이다. ‘심상 스케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 안에 실린 예순아홉 편의 시는 시인의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여러 가지 생각, 눈앞에 펼쳐진 자연 풍경 등을 보이는 대로 그려낸 그림과 같다.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서술은 마치 순간적인 크로키처럼 바람에 흩날리듯,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봄과 아수라》에서 겐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살아 있든 그렇지 않든, 혹은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든) 사이에 작용하는 현상을 관찰하여 언어적 스케치로 펼쳐 보인다.

동화작가이자 농업학교 선생이었던 미야자와 겐지
그의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시로 녹아들다


미야자와 겐지의 작품은 그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려서 자연 속을 뛰놀며 식물과 곤충 채집, 특히 광물 채집에 대한 관심을 크게 키웠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면 풍족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음에도 집을 나와 자신이 어린 시절 보았던 자연, 그 속에서 공생하던 동식물의 모습, 서로 한데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을 《첼로 켜는 고슈》, 《도토리와 살쾡이》, 《사슴 춤의 기원》 등의 동화로 옮겼다.
《봄과 아수라》의 시에는 환상이 가득한 동화를 썼던 겐지의 동화작가로서의 세계관과 상상력이 발휘된 한편, 당시 하나마키 농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가 관심을 두었던 음악과 종교, 화학과 지질학과 기상학과 새로운 농업 기술 등이 그의 예술성과 결합하여 섬세하고 풍부한 어휘로 묘사되어 단어 하나하나 곱씹는 재미가 있다.

그 찬란한 공간/ 위쪽에는 미나리아재비가 피고/ (최상급 buttercup인데/ 버터보다는 유황과 꿀에 가깝습니다)/ 아래에는 토끼풀과 미나리가 자란다/ 양철 세공 잠자리가 허공을 날고/ 비는 후드득 소리를 낸다_〈휴식〉중에서

바람과 편백나무의 이른 오후에/ 오다나카는 몸을 쭉 펴고/ 있는 힘껏 손을 뻗어/ 회색빛 고무공 빛의 표본을/ 미처 받지 못하고 툭 떨어뜨렸다_〈잔디밭〉중에서

이 현상의 세계 속에서/ 미덥지 않은 그 성질이/ 이렇게 아름다운 이슬이 되거나/ 움츠러든 작은 참빗살나무를/ 다홍색에서 부드러운 달빛색으로/ 호화로운 직물처럼 물들이기도 합니다/ 이제 아까시나무도 뽑아냈으니/ 만족한 마음으로 곡괭이를 내려놓고/ 나는 기다리던 연인을 만나듯/ 여유롭게 웃으며 나무 밑으로 향하나/ 그것은 하나의 정염/ 이미 물빛 과거가 되었습니다_〈과거정염〉중에서

특히 현실과 환상이 경계를 넘나들며 얽히고설키고, 산 것과 죽은 것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를 인식하고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봄과 아수라》 곳곳에 깔려 있다. 하나의 우주 속에서 모든 존재가 동등하며 나에게 녹아들기도 하고 또는 내가 녹아들기도 한다. 선명하게 반짝이는 자연의 모든 풍광이 고요한 눈으로 들어가 작가의 내면을 휘돌아 독특한 언어로 내뱉어진다. 그 과정에서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겐지의 삶 또한 어우러졌을 것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그리고 다시 삶으로,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다
행복하고 환상적인 그의 작품에도 현실에 대한 고민과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제국주의 때문에 점차 인류애와 평화에 대한 목소리가 사라지는 일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겐지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그에 따른 심경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집을 떠나 동화 창작에 몰두하던 겐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도시코의 병간호를 위해 고향에 돌아왔고, 농업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농민들의 가난한 삶과 고충을 피부로 느꼈다. 특히 그의 여동생, 도시의 죽음을 다룬 시에서 쓰리고 안타까운 그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새처럼 다람쥐처럼/ 너는 숲을 그리워했다/ 얼마나 내가 부러웠을까/ 아아 오늘 안으로 멀리 떠날 나의 누이여/ 너는 정말로 혼자서 갈 셈이니/ 나에게 같이 가자 부탁해다오/ 울며 내게 그리 말해다오
_〈솔바늘〉중에서

어째서 저기 저 두 마리 새는/ 저리도 구슬프게 우는 것일까/ 나를 구원할 힘을 잃었을 때/ 나의 누이도 함께 잃었다/ 그 슬픔 때문에 (...) 그 슬픔 때문에/ 정말이지 저 소리도 슬프게 들린다
_〈흰 새〉중에서

스물넷 나이에 스러진 여동생 도시를 떠올리는 겐지의 마음과 펜 끝에는 한없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듯하다. 그 무거운 한숨을 이전처럼 덤덤하게 표현하려 해도 끝내 “무성통곡”처럼 터져 나오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겐지는 그의 마음에 응어리졌던 슬픔을 여동생 도시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다시 흘러간다. 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처럼, 화산 폭발로 죽어버린 땅에도 파릇한 새싹이 다시 돋아나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반복되며 하나의 고리처럼 이어지니 도시의 죽음 또한 “과거의 정염, 물빛 과거”인 것이다.
겐지는 한국의 이중섭, 네덜란드의 반 고흐처럼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지금에야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로서 일본에서는 물론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 출간된 책은 동화 《주문이 많은 요리점》과 시집 《봄과 아수라》뿐이었고 글을 써서 받은 원고료 또한 5엔이 전부였다. 하지만 겐지는 죽기 직전까지도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았고, 꾸준히 자신의 문체와 표현을 발전시키며 짧은 생애 동안 총 100여 편의 동화와 400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리고 사후 60년이 지난 지금은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이 읽히고 사랑받는 작가로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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