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며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고 또 쓰는
소설가 박솔뫼의 첫 에세이
소설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도시의 시간』 『미래 산책 연습』 등을 출간하며 2009년 등단 이래 꾸준한 창작 활동을 이어온 작가 박솔뫼가 첫 에세이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을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문예지 『문학동네』 『릿터』 등을 비롯한 각종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과 출간을 위해 새롭게 쓴 세 편의 에세이를 포함하여 총 18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박솔뫼는 이 책을 통해 다카하시 겐이치로, 하라 료, 로베르토 볼라뇨 등의 작가들을 향한 오랜 애정을 기술하는 데 더해 그들의 소설을 더듬더듬 읽어가는 독서 과정과 그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 기록했다.
저자는 자신이 선정한 이 도서들을 자신이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긴 답변을 남기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어딘가 내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면 왜 그랬는지 어떤 부분이 그랬는지를 솔직하게 밝힌다. 더불어 이 책을 읽다 보니 떠오른 다른 책들, 떠오른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 등을 읊으며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이 작가에서 저 작가로 훌쩍 옮기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 모습은 마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와 책 얘기를 나누고 싶어 “너 이 책 읽었어?” 묻고는 주절주절 자신의 감상을 털어놓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을 통해, ‘재밌는 소설인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었던 독자들은 소설에 대해 말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게 될 것이며, 소설가 박솔뫼를 오래 애정해온 독자라면 그가 진심으로 사랑해온 소설과 작가들의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
18편의 글들은 여름부터 시작해서 다시, 여름에 이르기까지 계절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순서대로 한 편씩 읽고 그 안에 소개된 책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한다면 읽어보는 식으로 이 책을 소화하는 것도 좋을 테고, 자유롭게 각 글의 마지막에 정리되어 있는 ‘함께 읽은 책’의 목록을 확인한 뒤 관심이 가는 도서가 있다면 해당 에세이를 먼저 읽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소설가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 법
“그냥 나의 마음 그대로 쓰자니 그것은 좋아요! 너무 좋은데요!”
이 소설은 첫 장을 펼치자마자 아 힘이 있네 라는 느낌이 들었고 멈춰 서서 몇 페이지를 넘기다 빌려 와 집에서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 보면 훌륭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뛰어난 소설에는 정말 물리적인 힘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멈춰 서게 하고 그 힘은 정말로 책을 쥔 손목을 꽉 쥐고 있는 것 같다. (70쪽)
좋아하는 책은 읽고 또 읽기, 쓰고 말하고 다시 읽기. 아주 단순하지만, 박솔뫼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방법에 관한 가장 정확한 요약일 것이다. 저자는 훌륭한 소설을 읽을 때 만나는 감각적 체험에 기대어 기꺼이 반복해 읽기를 택한다. ‘이 소설 정말 훌륭하다’라고 머릿속에 떠오르기에 앞서 너무나 훌륭한 소설은 읽는 사람을 멈춰 서게 하고, “팔목을 덥석 붙잡”거나 “뒤통수를 누르는”(69쪽) 식으로 계속 읽게 하고, 읽는 사람을 계속해서 그 소설 안에 머물게 한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책을 읽는 자리, 책이 놓여 있는 자리의 풍경과 소설 속의 풍경이 겹쳐 ‘나와 책’으로 구성된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지듯, 박솔뫼 역시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안에 머물면서 동시에 책을 읽는 자신의 자리를 함께 돌아본다. 자신의 풍경과 책 속 풍경이 각기 다른 세계처럼 굴러가는 듯하지만, 읽는 사람을 통로로 서로 연결 지어지고, 그 모든 것이 ‘독서하기’라는 감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때문에 박솔뫼의 독서기는 그가 책을 읽는 풍경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집 『전화』 속 「조안나 실베스트리」를 읽고, 같은 단편집에 수록된 「앤 무어의 삶」은 다음 날 비슷한 시간 여전히 작은 선풍기가 돌아가는 방에서 읽는다. 그사이 우연히 친구를 짧게 마주치고, 또 우연히 마주친 친구가 볼라뇨 이야기를, 유미리 이야기를 건네고, 길을 따라 돌아와서는 유미리의 책을 읽으며 다시 그 안에 기꺼이 머무른다.
소설을 너머 작가-작가들로 연결하기
“가방 속 볼라뇨가 나를 툭툭 치고 있는 느낌을 느끼며
볼라뇨 읽어봐, 읽으면 알게 된다니까.”
이 책을 쭉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는 계속해서 마주치는 몇몇 작가의 이름들을 만나게 된다. 하라 료였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였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었다가, 문득 로베르토 볼라뇨가 불쑥불쑥 등장한다. 박솔뫼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다 곧잘 소설가에게로 시선을 돌리곤 하는데 이는 박솔뫼 스스로가 소설가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쏟아내는 작가들에 대한 애정은 충실한 독자로서 작품을 깊이 있게 읽는 것과 더 큰 연관이 있어 보인다.
박솔뫼는 작품을 즐겁게 읽으면서도 동시에 종종 왜 이 작품의 결말은 저것이 아니라 이것인지, 왜 주인공이 마지막에 택하는 사랑은 저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인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작품이 선택하지 않은 다른 가능성들을 열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작품을 지어낸 작가에게로 관심을 쏟게 되고, 작품에서 박솔뫼로 그리고 그 너머에 위치한 작가로 이어지는 연결 안에서 읽기를 지속한다. 작가 하라 료의 탐정 ‘사와자키’에 대해 말하면서 또 다른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인물 ‘필립 말로’를 불러들이는 식으로 한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한 작가에서 다른 작가에게로 가뿐히 뛰어넘는다.
혹은 루시아 벌린의 『청소부 매뉴얼』을 읽다가 문득 과거에 자신이 그리던 미국의 풍경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만들어준 것이었음을 떠올리고 그런데 브라우티건의 소설 속 풍경에서 떠나온 지 오래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벌린의 미국이 더욱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것을 고백한다. 하지만, 영원히 헤어진 줄 알았던 브라우티건이 어느 여름날 한 카페에서, ‘브라우티건 블렌드’라는 이름으로 다시 눈앞에 우연히 떠오를 때, ‘브라우티건 블렌드’로 내린 커피를 마시며 박솔뫼와 브라우티건은 다시 만난다. 계속해서 열리는 책의 통로와 지나감, 스쳐 갔다 다시 돌아오기. 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각자 서 있다 다시 만나고야 마는 연결은 박솔뫼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끝나지 않고 흐른다.
읽기에서 다시 나의 쓰기로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라고 속으로 중얼중얼거리다
눈을 뜨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 책을 살펴본 방식은 독자로서의 박솔뫼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며 그 작품을 쓴 소설가를 향한 애정의 크기를 가늠해보는 것이었다면, 소설 ‘읽기’를 통해 자신의 소설 ‘쓰기’를 실행하는 소설가 박솔뫼에 대한 기록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시 어떤 소설을 쓸 때 마이조 오타로에게 힘을 빌리고 싶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힘을 빌리고 싶은 다른 멋있는 사람들이 차례로 떠오르고 나 혼자 당신은 나의 친구 누구 씨는 나의 동료 멋있는 사람 하고 생각하며 기뻐한다 엄청 기분이 좋고 기쁘다. 나도 언젠가 나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사랑이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아주 힘이 넘치고 주눅 들지 않고 독특한 것을 말이다. 좋은 것을 읽으면 역시 그런 용기가 넘치게 되고 어쩌다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은 정말 좋다. (127~128쪽)
박솔뫼는 소설을 쓰기에 앞서 의식적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 읽는다고 말한다. 데뷔할 날을 기다리며 홀로 글을 쓰던 시기에는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글을 읽으며 그의 글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다시 쓰기를 지속하거나, 등단 이후 단편집 교정지를 보면서 하라 료의 판단력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고 힘을 얻는 식으로 말이다. 박솔뫼와 박솔뫼가 의지한 작가들, 그리고 그가 읽거나 쓴 소설이 서로 팽팽하게 연결되어, 하지만 언제나 그 중심엔 쓰고 읽는 사람 박솔뫼가 놓인 채로 각자의 자리에 있다. 저자는 계속해서 눈앞의 하라 료에게로 마이조 오타로에게로 손을 뻗고, 그들에게서 소설을 쓸 힘과 용기를 얻는다. 용기와 힘을 주는 대상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박솔뫼가 수많은 계절을 지나도록 읽어온 소설과 애정해온 작가들을 그의 책친구이자 책요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한 순간에 용기를 나눠주는 책요정들을 위해, 그들을 향한 사랑을 바탕으로 박솔뫼는 끊임없이 소설을 헤매고 헤매다 얻은 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책이 주는 아름다움은 이럴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지만 우리가 손만 뻗으면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때. 더 나아가 우리를 그 안에 머물게 하고, 더 읽게 하거나 쓰게 하거나, 말하게 할 때.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의 이름들을 읽어나가기를, 더불어 소설가 박솔뫼를 책요정 삼아 그의 글에서 더 읽을 힘을 얻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