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저자
백신애.최진영 지음
출판사
작가정신
출판일
2022-12-19
등록일
2023-02-06
파일포맷
EPUB
파일크기
13MB
공급사
알라딘
지원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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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소설, 잇다’의 첫 번째 책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백신애와 최진영,
시대를 넘어 이어나가는
여자들의 사랑의 실험


‘소설, 잇다’의 첫 번째 책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가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 문학의 근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시, 또 함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강경애, 나혜석, 백신애, 지하련, 이선희 등 근대 대표 여성 작가들의 중요 작품을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현대 작가들의 소설을 통해 변주함으로써, 근대 여성 작가의 마땅한 제 위치를 찾아내고,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현대 작가가 어떻게 그 궤적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확인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는 백신애 작가와 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담았다.
백신애는 식민지 조국을 떠나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방황하는 실향민들을 그린 「꺼래이」(1934), 현모양처의 삶을 살았음에도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의 심정을 담아낸 「광인수기」(1938), 「아름다운 노을」에서는 소년을 사랑하는 화가를 통해 여성의 애욕을 그려내는 등 민중의 궁핍한 삶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여성의 능동성을 금기하는 사회적 억압을 의문시하는 데까지 다양한 문제에 걸쳐 있었다.
최진영은 제13회 백신애문학상 수상자로 여성, 비정규직, 실업 청년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왔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비롯해, 죽은 연인의 몸을 먹는 애도의 방식을 통한 처절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구의 증명』)와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일기(『이제야 언니에게』) 등을 통해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이 자기 삶을 찾아가며 끝까지 살아내는 방식을 그렸다.

이 책에 실린 백신애의 소설 「광인수기」(1938), 「혼명에서」(1939), 「아름다운 노을」(1939)은 작가의 생애 마지막에 쓴 후기 주요 작품으로, 실제로 이혼과 고통스러운 투병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발표된 것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전향 지식인의 부인으로서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며 미쳐버린 여성이거나, 가부장제 가족제도로부터의 탈피를 부르짖는 이혼한 신여성이거나, 13세 연하의 소년에 대한 연모의 감정을 예술적 욕망으로 치환하려는 화가이다.
표제작인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에서 최진영은 백신애가 백 년 전에 제기했던 여성 억압의 문제를 “사랑이 주는 다정함과 위안, 설렘과 따뜻함”으로 풀어낸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백신애의 작품들에서 보여지는 강렬한 정념에 이끌리는 사랑이 아닌 “서서히 사로잡히는” 사랑을 그린다. 사십 대 여성과 이십 대 여성의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금지된 욕망’도 ‘파격적인’ 무엇도 아니기에 “가장 편안하고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두 주인공을 둘러싼 환경은 백신애가 살던 백 년 전과 동일하게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여성을 비롯하여 소수자를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와 공포”와 멀리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은 “직장과 가정이 주는 피로감” 안에서 나를 나이게 하는 자유로운 순간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 ‘반짝 빛을 내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백신애가 선택했던 사랑의 ‘정체’와 최진영이 선택한 사랑의 ‘힘’이, 그리고 두 사람이 그려낸 ‘사랑의 연대’가 “천천히, 오래오래” 우리 곁에 머물며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제 내 몸에서 삶의 먼지를 활활 털고
쉬지 않고 달려가리다”
백신애에게 ‘자유’이자 ‘신념’이자
‘예술혼’이었던, 사랑


「광인수기」는 광인(狂人)이 넋두리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서술된다. 비가 쏟아지는 날 자신의 팔자를 한탄하는 주인공 ‘나’는 동경 유학을 다녀온 남편을 두고 “교묘하게 이론만 갖다 붙여서 그저 합리화하려고만 하는 재주만 늘어”간다고 비판한다. 광인과 비광인의 어투를 오가는 ‘믿을 수 없는 화자’인 ‘나’는 남편의 불륜 현장을 급습한 대가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사회와 격리되었다가 ‘탈출’한다. 그럼에도 화자가 돌아가는 곳은, 남편에 의해 빼앗긴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다.
「혼명에서」의 주인공 ‘나’는 이혼을 통해 “평화와 안심”을 얻게 되었지만, 가족들은 조용히 근신하며 여성으로서의 명예를 회복시키기를 요구한다. ‘나’에게 그들이 보이는 관심과 보호는 외부와 자신을 차단시킬 압박일 뿐이며, 또한 구속이다. ‘나’는 결국 집을 떠나 S를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는 ‘나’에게 신념과 정체성을 찾도록 인도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곧 S의 부고가 들려오고, ‘나’는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쓴다.
작가 사후에 발표된 유작인 「아름다운 노을」에서 순희는 아들 또래의 소년 정규를 연모하고 있지만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게다가 아들 석주는 손이 없는 시댁에 양자로 보냈으며, 따라서 순희는 친정의 대를 이을 아들을 다시 낳아야 한다. 소년은 정혼자가 아들처럼 키운 친동생이다. 가부장제에 종속된 자신의 처지와 소년에 대한 사랑을 예술적 욕망으로 치환하려는 순희는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려다가도 아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 것.
비슷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반짝 빛을 내는 사랑의 순간


최진영의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의 이십 대 취준생인 ‘나’는 낮엔 도서관에서 공부를, 저녁엔 편의점과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는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불안감이 수시로 찾아든다. ‘내가 원하는 건 취직, 월급, 적금, 월세에서 전세로. 근데 그런 건 삶의 기본 조건 아닌가?’ 하고 자문하면서. 그리고 ‘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순희를 만난다. 무례한 한 남자 손님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순희는 말을 거들어 도와주었다. 그날 순희는 딸의 가출한 친구의 행방을 수소문하고자 편의점에 들렀었다. 그 뒤 ‘나’는 순희와 또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을 갖는다. 주말 아르바이트 장소인 펍에서였다. 우체국을 다니는 순희는 퇴근 후 펍에서 맥주를 한잔씩 하곤 했다. 거기서 ‘나’와 순희는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음악이나 영화, 잠자기 전 하는 생각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자기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순희를, 간간이 생각에 골몰한 표정을 짓는 순희를 보면서 ‘매혹’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것은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무언가”를 전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그 순간은 내내 ‘나’의 의식을 휩싸고, 그렇게 ‘나’는 “순희 씨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백신애와 최진영이 선택한
‘사랑의 연대’가 우리 곁에서
“천천히,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최진영 작가의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의 주인공은 우체국을 다니는 사십 대 ‘순희’와 취준생인 이십 대 여성 청년 ‘정규’다. 두 주인공의 이름과 나이 차이 등은 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에서 가져왔으나, 「광인수기」와 「혼명에서」에서 착안한 듯한 설정도 엿보인다. 순희와 정규는 「광인수기」의 ‘나’와 같이 현실의 모순을 거침없이 폭로하기도 하고, 「혼명에서」에서 ‘나’가 ‘S’와의 반복되는 세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흠모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처럼, 이들 또한 세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향한 이끌림을 확인한다. 다만 최진영 작가는 「아름다운 노을」에서와 같이 강렬한 정념에 이끌리는 사랑이 아닌 “서서히 사로잡히는” 사랑을 그린다.
최진영 작가는 이번 작업에 대한 소회를 담은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에서 1938년에 발표한 「광인수기」의 여성 화자를 두고 시간적 배경을 현대로 바꾸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 문장인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에 여러 번 밑줄을 그으면서 “현재에도 어떤 자들에게 여성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그럼에도 최진영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백신애를 비롯한 많은 여성 작가들이 앞서 글을 써주었기에, 현재에도 여전히 소설을 읽고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그리고 그것은 ‘기적’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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